사람 키보다 약간 큰 보드에 몸을 의지해 파도를 타며 즐기는 것을 서핑이라고 합니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바다를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파도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파도를 좋아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에 대한 집착을 시작합니다. 그런 이유로 당연하게도 서핑을 배웠고 차츰 바다에, 파도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머물고 있던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폭풍해일이 도착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그는 이때구나 싶어 바다로 나가 기다렸습니다.
바다는 수천마리의 고래 떼가 몰려와 첨벙이는 것처럼 일렁이고 부대끼고 넘실거렸습니다. 그가 보드를 들고 바다로 뛰어든 순간에도 파도는 마치 폭발을 앞두고 있는 지표면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서핑을 즐기는 대신 보드에 배를 대고는 하나의 파도를 넘고 또 하나의 파도를 넘어 점점 거세지는 파도의 위력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 멀리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도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파도는 커다란 산 하나가 융기하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두려움 없이 조바심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파도를 눈에 넣기 위해 최대한 가만히 그쪽을 바라만 봤습니다. 과연 그는 그 파도에 자신을 태웠을까요.
하고 있던 그대로 보드에 배를 댄 채 그는 방향을 틀어 바닷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헤엄쳐 나왔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파도를 보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날로부터 서핑과도 남남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그것 앞에서 백기를 든 것은 아닌지 그에게 큰 파도를 왜 보고자 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이 그 파도보다도 더 무섭고도 강력한 것일 수도 있고, 그 말로 인해 내 얄팍한 삶의 기준이 부끄러워질 것도 같아서였습니다.
한 사람을 또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요트대회에 참가한 사람입니다. 그는 죽으려고 대회에 참가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처음엔 잘못 알아들어 죽기 살기로 대회에 참가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듣고 보니 말 그대로 죽을 만큼의 강력한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하는 대회였습니다. 대회는 이렇습니다. 먼저 참가 신청을 한 사람들 중 제비뽑기로 네 명을 뽑아 한 조를 이룹니다. 그 한 조가 요트 하나를 배정받은 다음 그 길로 44일간 남태평양을 항해해 결승점에 골인하게 됩니다. 모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단 네 명이 교대로 노를 저어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믿기지 않는 그 사실을 뛰어 넘기 위해 그는 그 대회에 죽을 각오로 참가한 것이고 결국엔 다행히도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겨우 네 명이라는 사실도 아쉽고 걸리는 부분이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며 각자 체력의 상태라든지 노를 젓는 실력이 어떤지도 모른 채 무려 44일 동안 바다 위에서의 삶을 어울려 지탱해야 합니다.
자, 네 명이 출발선에 섰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납니다. 밉고 싫은 사람도 그 안에 있으며 당최 이해 안 가는 사람도, 그리고 아예 3명이 가도 좋겠다 싶은 마음을 들게끔 하는 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분명히’ 라는 말을 지금 쓰고 있는 것은 그것은 어떤 삶의 법칙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그 대회에서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하나는 이 두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낭만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강력한 요소가 은밀한 뇌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아서도 아니며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따라붙는 불안은 늘 우리를 망연히 서성이게만 합니다.
지배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 불안을 감시해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안을 가려줄만한 어떤 모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모형과의 낭만적인 거래를 시작하십시오. 그 거래가 없는 한 우리가 다시 태어날 확률도 찬란한 새날이 올 확률도 없을 거라고 믿어보는 겁니다.
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