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간장 적신 삼겹살에 매콤달콤 파절이...친구야, 소주 한잔 하자

입력
2014.12.18 13:31
0 0

"삼겹살 구이ㆍ파절이 원조" 자처

특화 거리 조성해 시장 살려 내

저렴한 가격에 식당별 맛도 다양

한국인의 외식 메뉴로는 삼겹살이 단연 으뜸이다. 삼겹살은 서민과 가장 친한 먹거리 중 하나다. 여북하면 한번 만나자는 뜻으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는 말이 통할까. 그럼 삼겹살에도 원조가 있을까? 전국 어디서나 온 국민이 즐겨먹는 음식의 본고장을 따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한데, 삼겹살의 원조를 자처하며 삼겹살을 테마로 한 거리를 만든 곳이 있다. 바로 청주 서문시장의 삼겹살거리 이야기다.

저녁 무렵의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문시장. 꽃돼지 인형들이 반갑게 맞이하는 입구에 들어서자 구수한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들이키는 이들이 점포마다 가득하다. 송년회 시즌을 맞아 모임이 몰린 듯 시장통 곳곳에서 “위하여”란 함성이 연방 터져 나왔다.

연탄구이집 D식당에서 만난 김수환(41ㆍ회사원)씨는 “이곳은 집집마다 삼겹살 맛이 독특한데다 서비스도 좋고 가격도 큰 부담이 없어 회식 장소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인근 J식당 주인 김선례(55)씨는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이 통합청주시 출범 기념식 참석차 청주에 왔다가 우리 시장에 들러 삼겹살을 드신 후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엔 서울, 대전 등지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활짝 웃었다.

이곳 서문시장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존폐 위기에 몰려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서문시장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청주 최고의 재래시장이었다. 그러나 1998년 고속버스터미널이 시 외곽으로 떠난 데 이어 2002년 시장 코앞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견디다 못한 상인들은 하나 둘 시장을 떠났다. 130여 곳이 성업하던 점포가 절반도 안 되는 60여 곳으로 급감했다. 고사 위기에 처한 그 때 청주시가 “춘천 닭갈비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특화 거리를 조성해보자”는 안을 내놨다.

그 음식이 삼겹살이다. 내륙 중심에 자리한 청주는 예로부터 육고기 문화가 발달했다. 조선시대 초기 사회상을 상세히 기록한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편에 보면 청주에서 말린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청주에는 전국 3대 우시장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깃집과 해장국집이 수없이 생겨났고, 1960년대 초 ‘만수집’ ‘딸네집’등의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팔기 시작했다. 청주 토박이들은 이들 식당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된 삼겹살 집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스토리를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에 접목해보자는 청주시의 제안에 시장 상인들은 즉각 반응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상인들은 삼겹살거리추진위원회를 꾸리고 건물주 설득에 나섰다. 폐점포 12곳을 새로 단장해 삼겹살 식당으로 만들었다. 칙칙한 때가 덮인 길은 삼겹살 무늬의 새 길로 단장했다. 시의 도움을 얻어 삼겹살 거리를 알리는 현수막, 조명 안내판을 설치하고 가게 별로 개성 있는 간판도 달았다. 동시에 시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도 했다. 드디어 2012년 3월 3일 상인들은 청주 삼겹살 거리를 열었다. 추진위원회를 꾸린 지 9개월 만이었다. 이렇게 삼겹살 거리는 전광석화처럼 탄생했다.

청주 삼겹살은 좀 특별하다. 굽는 법부터 다른 지역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생고기를 불판에 바로 올리는 게 아니라 달인 간장에 살짝 적셨다가 굽는다는 점이다. 이 간장은 생강, 대파나 각종 한약재를 넣어 짜지 않게 옅게 달여내는 게 비결이다. 이렇게 구우면 누린내가 나지 않고 육질이 부드러워져서 훨씬 감칠맛이 돈다. 청주 삼겹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파절이다. 청주는 삼겹살 곁들이로 파절이를 처음 선보인 곳인데, 종류도 다양하다. 간장에 고춧가루와 식초를 섞어 상온에서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낸 파절이, 매콤 달콤한 초장으로 맛을 낸 파절이, 고춧가루와 소금만 넣어 파의 매운감과 식감을 생생히 살린 파절이 등 가지 가지다.

삼겹살 거리 업주들은 암퇘지 생고기만을 쓴다. 어느 가게에서든 두툼하고 싱싱한 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1인분(200g)에 9,000원으로 모든 업소가 동일하다.

지난 3월 3일 청주 서문시장에서 열린 삼겹살거리 축제 모습. 수백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몰려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다. 고사 위기에 놓였던 서문시장은 삼겹살 특화 전략으로 생기를 찾으면서 정부의 대표적 민생경제 정책인 ‘1시장 1특화’ 사업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충청리뷰 제공
지난 3월 3일 청주 서문시장에서 열린 삼겹살거리 축제 모습. 수백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몰려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다. 고사 위기에 놓였던 서문시장은 삼겹살 특화 전략으로 생기를 찾으면서 정부의 대표적 민생경제 정책인 ‘1시장 1특화’ 사업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충청리뷰 제공

삼겹살 거리에서는 3월 3일이면 삼겹살 축제가 열린다. 이날은 시장통에 테이블을 가득 펼쳐놓고 손님들에게 1인당 5,000원씩만 받고 생삼겹살을 무제한 제공한다. 양념으로 각종 공연과 체험 행사도 진행된다. 또 매달 3일에는 ‘삼겹살데이’라는 이름으로 할인 행사를 펼친다. 이날 야채가게, 식품점 등 시장 내 다른 가게들도 20% 할인 행사를 한다. 5월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효 이벤트가 열리는 등 고객유치 마케팅 행사가 연중 이어진다.

청주 삼겹살 거리는 단박에 지역을 대표하는 곳으로 떴다. 하지만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점포 확장이 관건이다. 상인회는 당초 거리 안에 40~50개의 삼겹살집을 유치할 참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입점한 곳은 13개소에 머물러 있다. 이는 상인들과 건물주간의 의견 차이 때문이다. 대부분 연세가 많은 건물주들이 돈을 들여 점포를 바꾸려는 일에 소극적인 것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김상돈(60)서문시장 상인회장은 “건물주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1시장 1특화’사업의 장점을 알리면서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삼겹살 거리 상인들은 더 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최근 항암쌈채를 식탁에 올리고 있다. 종자명장 박동복씨가 개발한 이 쌈채는 항암 성분이 다량 함유된데다 맛과 식감도 좋아 이목을 끌고 있는 기능성 신품종 채소다. 값은 비싸지만 고품격 서비스로 차별화하겠다는 것이 상인들의 생각이다.

상인들은 중국인 관광객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청주국제공항이 72시간 무비자 입국 항공으로 지정되면서 청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코스에 삼겹살거리 방문 일정을 포함시키고 중국인 유학생들을 활용해 중국 관광객을 맞이할 계획이다.

서문시장 상인회는 궁극적으로 삼겹살 거리를 다양한 돼지고기 음식점이 총망라된 곳으로 만들 참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내년 중 돼지고기 관련 요리 경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독특하고 참신한 돼지고기 요리법을 선보인 이들을 우선적으로 삼겹살 거리에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삼겹살거리 활성화를 위해 청주시도 적극 거들고 있다. 시는 서문시장으로 연결되는 주변 보행로를 넓힌 데 이어 시민 휴식공간인 쌈지공원을 조성했다. 인근 서문교 조명과 조형물도 보수했다. 국비지원을 받아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청주시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년 3월부터 서문시장에 풍물야시장을 개설키로 했다. 운영은 상인회서 맡는다.

김충영 청주시 도시재생과장은 “죽어가던 재래시장이 삼겹살 덕분에 서서히 활기를 찾고 있다”며 “청주만의 특별한 삼겹살 맛과 흥미로운 얘깃거리, 역사적 사실과 문화를 잘 버무려 전국에서 제일가는 음식 거리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