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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독립된 장르로 인정해야

입력
2014.12.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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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할 만큼 성장했는데

어린이 책 하위 장르나 동화로 인식

겨울호에 전문가 좌담ㆍ제언 실어

11년만에 15권으로 마무리된 창비 우리시 그림책의 마지막 작품 '강아지와 염소 새끼'(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의 한 장면. 이 책 한 권에만도 제작 기간 3년이 걸렸다. 그림작가는 주인공 염소의 얼굴을 찾아 전국의 염소농장을 2년 이상 찾아다녔다. 창비 제공
11년만에 15권으로 마무리된 창비 우리시 그림책의 마지막 작품 '강아지와 염소 새끼'(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의 한 장면. 이 책 한 권에만도 제작 기간 3년이 걸렸다. 그림작가는 주인공 염소의 얼굴을 찾아 전국의 염소농장을 2년 이상 찾아다녔다. 창비 제공

한국의 그림책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좋아졌다. 신진 작가들의 창작 그림책이 늘어나는 가운데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그림책을 중심으로 한 시민과 작가들의 연대 활동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주 독자층인 유아와 어린이 독자가 줄어들고 작가들의 출판 계약 조건은 더 나빠지는 등 외부 환경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창비출판사가 펴내는 계간지 ‘창비어린이’ 2014 겨울호는 특집 ‘창작 그림책, 어디쯤에 있나?’를 통해 한국 그림책의 현실을 짚었다. 그림책 편집자, 연구자, 창작자, 교육자 네 사람의 좌담을 포함해 네 꼭지로 짠 이번 특집에서 좌담 참석자들은 그림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을 아쉬워하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대안을 모색했다.

그림책을 둘러싼 환경의 악화는 작가들이 받는 선인세의 하락, 그림책 신간을 독자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장의 실종에서 드러난다. 작가 조은숙씨는 출판시장이 위축되면서 1만 부 내외였던 선인세 기준이 5,000부 또는 초판 발행 부수로 내려갔다고 전했다. 그는 나온 그림책을 다루는 서평이나 평론이 거의 없어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알리기가 어렵고 베스트셀러만 계속 팔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림책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다. 그림책 출판사 책읽는곰의 우지영 편집장은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픽처북’ 코너를 따로 운영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그림책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봐줄 것을 요청했다. 사실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게 그림책인데, 한국에서는 어린이책의 하위 장르나 그림동화처럼 여기기 때문에 독자의 폭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림책 작가 권윤덕씨는 예전에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엄마들도 그림책을 즐겼지만 지금은 그 열기가 ‘학습’ 중심으로 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윤경씨는 10년 동안 책에 그림을 그려오면서 어린이를 보는 고정된 시각이 가장 답답했다며 어린이는 왜 다 착하고 밝고 귀엽게 그려야만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림책 편집자조차 그림의 시각적 언어를 읽어내지 못하고 문학적 서사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하다는 말도 했다. 이에 대해 우지영 편집장은 오래 일하기 힘들 만큼 출판 환경이 나빠진 탓에 편집 노하우를 전해줄 선배들이 다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사회를 본 아동문학 평론가 김지은씨는 그림책의 생산 조건이 골고루 성숙해야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다는 말로 좌담을 마무리했다. 작가-독자-출판을 잇는 새로운 삼각형이 그 토대다.

창비 우리시 그림책 <강아지와 염소새끼>의 한 장면. 창비 제공
창비 우리시 그림책 <강아지와 염소새끼>의 한 장면. 창비 제공

이번 특집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씨는 작가와 편집자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한국 그림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이의 것인가, 부모의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과거 지향적인 배경과 소재, 그림책 작가들의 지나친 자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력 부족이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 작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지만,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를 풀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갖춘 책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의 취약성을 극복할 방도로 옛이야기를 이용한 그림책이 나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그림책 작업의 ‘협업’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 그림책에는 왜 아파트가 없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아이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그림책을 비판했다. 작가들이 요즘 아이들의 삶을 살피기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정작 그림책의 주인인 아이들은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시골의 자연과 사계만 담는다든지, 예전의 아이들이 누렸던 정서적 풍요를 전하며 너희는 참 안됐다는 식으로 그려서는 어른은 좋아할 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외면 당한다고 지적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아이에게 책을 권하는 어른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번 특집의 나머지 두 꼭지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 그림책(강승숙 인천 부광초교 교사), 한국 그림책의 최근 경향과 서사적 실험(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남지현)을 다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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