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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러시아, 한반도에 눈을 돌리다

입력
2014.12.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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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ㆍ안보 체제 구축 중요성 강조

푸틴 신동방정책, 남북한 정ㆍ경 협력 강화

북핵ㆍ북한 문제 푸는 데 역할 기대감 높아

조금 놀랐다. 이달 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한국ㆍ러시아 언론인포럼으로 만나게 된 러시아의 고위당국자로부터 동북아 평화ㆍ안보체제 구축의 필요성과 조건, 비전을 듣고서다. 이 당국자는 1970년대 유럽 사정이 비슷하다면서 동북아에도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다자안보협력기구가 필요하다는 점, 남ㆍ북ㆍ러 3각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규모 군사훈련이나 고고도 미사일 방공망(THAAD) 배치 움직임 등 한미가 한반도 주변 긴장 강도, 6자 회담 재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ㆍ러 갈등, 서구의 경제제재와 유가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로 정정이 불안한 가운데서도 동북아 비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현듯 북핵 6자회담 진도가 크게 나갔던 2007년 2ㆍ13 합의가 떠올랐다. 2005년 9ㆍ19공동성명에서 곁다리로 끼어둔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 노력 공약’은 2ㆍ13 합의에서 ‘동북아 평화ㆍ안보 체제’ 실무그룹 설치로 구체화했다. 러시아가 실무그룹 의장국이 됐다.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수석대표는 “실무그룹 중 매우 시급한 것도 있고, 매우 중요한 것도 있다”면서 “동북아 평화ㆍ안보 체제 그룹은 후자 쪽”이라고 치사(致辭)했다. 한반도 비핵화나 경제ㆍ에너지 협력 등 5개 실무그룹 중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기에 역할이 애매했던 러시아에 안겨준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북핵 불능화 합의까지 도달했던 6자 프로세스는 시료채취 등 검증 절차에 대한 북한측 거부로 중단되면서 3차까지 열린 동북아 평화ㆍ안보체제 실무그룹도 멈춰 섰다.

잊혀질 만도 한 6년이 흐른 지금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상에 방점을 두는 러시아의 계산, 전략은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정치ㆍ경제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잃었다. 북한의 경제적 목줄을 쥐고 있는 중국에 비할 게 못 된다. 하지만 2012년 집권 3기에 표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 정책’은 과거와 무게가 다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시정연설에서 “극동 개발은 21세기 러시아 정부가 이룩할 중대 과제”라고 했다.

극동개발부 신설과 극동지역에 수 십 곳의 경제특구 지정, 러시아 하산ㆍ북한 나진항 철도 연결과 남ㆍ북ㆍ러 우회무역 실현은 물론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이나 시베리아철도사업에 대한 의욕도 남다르다. 한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남북러 3각 협력에서 한국만 준비가 덜 돼 있다”는 말도 했다.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과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을 뻔히 알만한 러시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한국에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달라는 주문일 게다. 지난달 북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특사 방문과 함께 내년 상반기 북ㆍ러 정상회담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남북한에 대한 전방위적인 협력강화 노력은 극동개발과 동북아에서의 정치적 갈등 완화, 세력균형 유지라는 러시아의 국가적 이해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표방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이해를 같이 한다. 2008년 7월 6자회담 이후 북한의 2,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핵 문제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평화 조성을 위한 주변 여건은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물론 무조건적인 재개(북한)와 북측의 의미 있는 조치(한미)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는 6자회담이 언제쯤 그 실마리를 찾을지 가늠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진전과 동북아 평화ㆍ안보 체제의 길은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아주 먼 길이다.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한국 언론인들과의 대화에서 경제통상 강화와 역내 평화ㆍ안정의 밀접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이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유를 찾게 되지만,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동쪽에 국가 이익의 한 축을 둔 러시아가 북한 문제 해결과 동북아 긴장완화에 생각지도 않은 큰 역할을 해낼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물론 동북아 문제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균형이 잡혀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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