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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그루 靑氣의 의연함에 白雪마져 숨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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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그루 靑氣의 의연함에 白雪마져 숨죽이고...

입력
2014.12.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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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눈내리는 겨울에 더욱 멋있다. 짙푸른 가지에 눈송이가 쌓이면 숲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장성=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눈내리는 겨울에 더욱 멋있다. 짙푸른 가지에 눈송이가 쌓이면 숲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장성=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백비(白碑)라는 이름대로 그의 비석은 깨끗함 그대로였다.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의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 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볕이 잘 드는 야트막한 산자락의 박수량(1491~1554) 묘비에는 명종의 어명대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요즘으로 치면 서울시장인 한성판윤까지 지냈지만 황룡면 아치실 그의 생가에는 끼니때에도 굴뚝 연기가 올라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집이 낡아 비가 샐 정도였단다. 장성군을 ‘청백리의 고장’으로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조선시대 청백리가 218명이고 그 중 장성 출신은 2명에 불과하지만, 장성군은 전국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청백리 교육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아무것도 쓰지않음으로써 청렴을 강조한 박수량 백비
아무것도 쓰지않음으로써 청렴을 강조한 박수량 백비

‘교육’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끝내기 마련이지만 장성의 청백리 교육프로그램이 꾸준히 호응을 얻는 데는 축령산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편백나무 숲 산책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요즘 공직자에게 청백리의 검소함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일단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공직자로서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편백나무 숲만한 곳이 없죠” 억지가 좀 섞이긴 했지만 장성군 관계자의 풀이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눈발이 오락가락 하는 12일 축령산 편백나무숲을 찾았다.

임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산책길을 내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임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산책길을 내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일부 등산객은 산림욕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웃통을 벗고 산행을 하기도 한다.
일부 등산객은 산림욕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웃통을 벗고 산행을 하기도 한다.

장성읍내에서 서삼면 추암리 축령산 입구로 가는 도로 곳곳에는 ‘축령산 자연휴양림’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축령산에는 흔히 생각하는 자연휴양림 시설은 없다. 통나무집 숙소도, 물놀이장이나 눈썰매장도 없다. 그저 나무의 기운을 받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는 숲길이 있을 뿐이다.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치유의 숲’이다.

추암리에서 축령산으로 가는 임도에는 잔설이 깔려 있었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30분쯤 올랐지만 편백숲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키가 큰 층층나무와 서어나무 아래 조릿대만이 얇은 초록 이파리에 하얀 눈송이를 이고 있었다. 산중턱까지 올랐다고 생각될 무렵 산림청 치유의 숲 건물을 만난다. 건물 앞의 큰 비석이 먼저 눈에 띈다. ‘춘원임종국조림공적비(春園林種國造林功績碑)’. 공직자는 아니었지만 인근 순창군 출신 임종국의 조림 공적을 기록한 내용만 봐도 청백리 숲으로 손색이 없다. 1956년, 그러니까 모두가 끼니를 걱정하던 그때부터 조림에 착수해 비웃음을 산 일에서부터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염천(炎天)의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땀 흘렸던 일, 결국은 전답과 주택까지 팔아 끝내 산림녹화를 이뤄낸 ‘조림왕’의 공적이 세세히 적혀있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378ha의 면적에 250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빼곡한 전국 최대의 인공조림지가 되었다. 그의 이름대로 종자를 심어 숲의 나라를 이룬 셈이다.

이곳부터 모암리로 가는 길은 내내 울창한 숲이다. 바닥에 쌓인 눈만 아니라면 겨울 풍경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하늘을 향해 죽죽 뻗은 나무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모습이 시원하면서도 푸근하다. 붉은 기운을 띤 줄기만 보면 구분이 힘들지만 숲은 편백나무와 삼나무(약20%)가 섞여있다. 뾰족한 잎이 동글동글하게 모여 쓸어 내리기 좋게 난 것은 삼나무, 편편하게 눌린듯한 잎이 편백나무다.

추암리에서 모암리까지는 임도로만 이동하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르내림도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편백숲을 그렇게 통과하기는 아쉽다. 산림청에서 ‘치유의 숲’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따로 있다. 임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숲내음숲길, 산소숲길, 건강숲길, 하늘숲길 등의 산책길을 내고 피톤치드 가득한 숲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각각 2~3km 거리로 1시간~1시간 30분 정도가 더 걸린다. 더러 경사가 급한 곳은 나무 데크도 설치했지만 대개는 편안한 흙길이다. 눈 쌓인 길을 걷기에는 오히려 흙길이 제격이다. 짙푸른 잎새 사이로 간간이 파고 드는 햇살과 함께 숲의 청량한 기운도 함께 쏟아지는 듯하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고 걷는 등산객도 있다.

모암리에 도착하자 다시 눈발이 시작됐다. 조금씩 쌓이는 눈송이에 숲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트리로 꽉 찬 듯하다. 편백나무숲이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이유다.

모암리 입구는 실제로는 삼나무숲이다. 장성 축령산 편백숲의 약 20%는 삼나무다.
모암리 입구는 실제로는 삼나무숲이다. 장성 축령산 편백숲의 약 20%는 삼나무다.

임도가 잘 나있고 다른 산에 비해 겨울산행이 무난하지만, 너무 만만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임도 일부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는데 눈이 덮이면 오히려 복병이다. 기본 산행 장비는 갖추는 게 좋겠다. 겨울산행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모암리 쪽을 선택하는 게 좋다. 주차장에서부터 바로 울창한 편백나무숲이다. 굳이 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상록침엽수림이 뿜어내는 의연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호남 유학의 자존심 필암서원 입구의 확연루
호남 유학의 자존심 필암서원 입구의 확연루

산행을 마치고 장성읍으로 다시 나온다면 필암서원을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이다. 공부하고 제사 올리는 것이 주목적인 서원 건물은 대체로 소박한 것이 특징이지만, 필암서원에서 유일하게 치장이 화려한 건물이 있으니 바로 경장각(敬藏閣)이다. 팔작지붕에 단청까지 입혔고, 정조 임금의 초서 현판까지 화려하다. “호남의 공자요, 동방의 주자다. 도학과 절의, 문장에서 하서만한 인물은 없다”고 칭송한 정조의 주창으로 김인후는 사후 236년 만에 동국 18현에 올랐다. 50세에 생을 마감해 학맥을 두텁게 잇지 못한 탓에 후대 평가는 동시대 인물인 퇴계 이황에 뒤지지만, 학문은 그에 못지 않았다는 평가다. 정문 역할을 하는 확연루(廓然樓)도 소박하지만 기품이 넘친다.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필암서원은 호남 유학의 자존심을 은근하게 이어가고 있는 장성의 저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장성=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 메모]

▷장성 축령산은 고창담양고속도로 장성물류IC에서 가깝다. 축령산(자연)휴양림, 장성치유의숲, 축령산 편백나무숲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통일된 명칭이 필요해 보인다. 네비게이션에 열거한 이름을 입력하는 것으로는 입구를 찾기 힘들다. 추암리 입구는 서삼면 추암리 산20번지, 모암리 입구는 모암리 682번지를 치면 정확하다.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여행객은 대체로 모암리에서 출발해 추암리로 내려오는데, 주차한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면 둘 중 한곳을 택해야 한다. 모암리는 편백숲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는 반면 매점과 식당이 없고, 추암리는 편백숲까지 거리가 먼 반면 편의시설과 체험시설이 갖춰져 있다. 추암리 백련동농원에서 편백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인근 숙소로는 추암리에서 약6km 떨어진 청백한옥이 있다. 명종이 박수량에게 내렸다는 99칸 양반집터에 장성군이 새로 한옥숙소를 지어 위탁운영하고 있다. 청백한옥과 붙어있는‘청백리 자연밥상’에선 마을에서 나는 자연재료를 이용한 담백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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