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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쓴 편지] 보은의 종소리

입력
2014.12.1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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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이름을 가진 절이 오대산을 포함, 전국에 10여 개 되지만 강원 원주 치악산 상원사(上院寺)만큼 빼어난 산세와 흥미로운 구전설화를 지닌 사찰은 드물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해발 1,200m의 높은 암벽에 자리한 절터와 주변 풍광에 처음 놀라고 ‘전설의 고향’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한‘은혜 갚은 꿩’의 배경이 여기라는 것에 두 번 놀란다. 길을 가던 스님이 구렁이에게 잡혀 먹힐뻔한 꿩 가족을 구해주고, 밤길에 머문 집에서 젊은 여인의 모습을 한 구렁이에게 목숨을 잃으려다 종소리가 세 번 울려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보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꿩 보다는 까치로 더 알려져 있지만 치악산(雉岳山)의 ‘치’가 꿩을 뜻하는 걸로 볼 때 전설의 주인공은 꿩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눈 쌓인 절벽의 상원사 종루를 바라보면 종에 머리를 부딪혀 생명을 던진 ‘은혜 갚은 꿩’들의 외침이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원주=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눈 쌓인 암벽 사이로 보이는 치악산 상원사 종루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듯하다.

험한 치악산 산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눈 앞에서 절벽 위에 우뚝 솟은 상원사 종루를 볼 수 있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험준한 치악산 남대봉을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상원사란 절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높은 곳에 위치한 절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절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백 평도 안되는 좁은 암벽 위에 위치한 절 터에 놀라고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는 치악산 절경에 두 번째로 놀란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은혜 갚은 까치’의 전설을 간직한 곳임을 알고 신기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원사 주지스님이 이야기해 주는 전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까치의 전설과는 좀 다르다. 주인공이 선비와 까치가 아니고 스님과 은혜 갚은 꿩 이야기로 바뀐다. 주지스님에게 들은 전설은 이렇다

수행이 깊은 한 스님이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구룡사로 향하던 중 구렁이 한마리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잡아 먹으려는 순간 지팡이로 구렁이를 물리쳐 꿩들을 구해 주었는데, 밤길에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여인 혼자 머물고 있는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묵게 되었다. 잠결에 답답한 기운을 느낀 스님이 눈을 뜨자 구렁이로 변한 그 여인이 낮에 죽였던 구렁이의 아내라고 하며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죽은 남편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종을 울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종이 세 번 울렸다.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는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더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님이 정신을 차리고 상원사로 달려가 보니 낮에 구해 주었던 꿩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종루 옆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이 전설로 옛날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던 산이 꿩의 한자말인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전설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 쌓인 절벽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종루를 보고 있으면 전설 속으로 빨려들 것 같다.

원주=왕태석기자 king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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