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가 지나고 연말이다. 연말 증후군이란 말이 의미하듯 이즈음이 되면 모든 게 귀찮고 의기소침해진다. 무기력해지고 괜히 우울해진다. 거창하게 세웠던 새해 계획을 이루지 못한 채 한 해가 갔다는 자책감과 허무하게 나이만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다른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고독감과 외로움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공적인 공간에서의 외로움과 고독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호퍼는 평범한 호텔, 고속도로, 음식점, 영화관 등과 같은 공공장소를 자주 그렸고, 이런 넓은 공간 속 인물들은 주로 홀로 있거나 서로 소통을 하지 않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고립돼 있거나, 기운 없이 공허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호퍼는 이런 그림들을 통해 미국 사회 이면의 꾸며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고층 건물과 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진 화려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현대 사회의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부유함과 맞바꾼 외로움이라는 대가가 그들의 삶에 남아있는 것이다. ‘자동 판매식 식당(Automat)’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 고립돼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여자를 통해 암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창가에 비친 형광 불빛은 그림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또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은 방에 있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들 작품 모두 기계화되고 편리함과 신속성이 보장된 현대 사회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외롭기 그지없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더라도, 자신의 일만 할 뿐 소통은 없다. 자기 핸드폰에만 집중할 뿐 가족들 간의 대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현재 우리의 일상과도 많이 닮아있다.
고독이란 사회적 고립과 원만하지 않은 사회관계로 인해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 반응이다. 이는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심리상태이며 정신적 고통이다. 단지 혼자 남겨졌다고 해서 고독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자신이 원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고독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이 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고독은 일시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그러나 고독함이 지속될 경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곤 한다. 바쁜 일상과 전자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변 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며 경험을 나누는 것보다, 사생활을 지키며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 선호한다. 사람들이 정말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실험이 시카고 대학에서 이뤄졌다. 한 집단에게는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라고 지시했으나 다른 집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참여자들은 모르는 옆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갈 때 더 기분이 좋을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반대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더 긍정적인 기분을 갖게 됐다. 혼자 있는 것은 그저 익숙한 것일 뿐,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사실 더 큰 행복감이 따른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풍요로운 삶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을 그린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고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경험을 나누지 않으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노랫말처럼 자기만의 길을 가기보다 다른 이들과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 고독의 해법이 아닐까. 연말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작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라도 털어 놓고 나눌 때 외롭지 않은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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