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우디 등 인권 유린현장에 개선 촉구하는 자필 편지 보내
각국 정부 압박해 조치 끌어내기도...피해자에겐 혼자가 아니란 메시지
“인권 위해 펜 들어요” 경기 고양시 ‘편지쓰는 인권마을’ 사람들
“가스 누출로 오염된 땅에서 철 모르고 뛰어다닐 인도 보팔 지역 아이들을 위해 미약하지만 한 통의 편지와 마음을 보탭니다.”(대학생 신한슬(24)씨)
“말하고 표현할 자유는 신께서 인간에서 주신 권리입니다. 라이프 바다위(26ㆍ사우디아라비아)씨에게 가하는 인권침해 행동을 즉각 중지하십시오.”(신석현(57)씨)
“저도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어요. 음콘도(남아공) 지역 여성들이 건강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주부 홍주리(28)씨)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청소년 북카페 ‘깔깔깔’에서는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편지쓰는 인권마을’ 주민 100여명이 모여 각자 세계 각지의 인권 유린 현장에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을 맞아 실시한 ‘편지쓰기 마라톤-편지 한 통의 기적’ 캠페인이다.
올해는 4개 사연이 인권 편지의 주제로 선정됐다. 30년 전 사상 최악의 가스누출 사고가 발생한 인도 보팔 지역의 환경 개선, 남아공 임산부들을 위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 정치ㆍ사회 논쟁 웹사이트를 개설한 죄로 채찍질 1,000대와 10년 징역형을 받은 사우디의 라이프 바다위씨 석방,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군사 기밀을 넘겨 35년 징역형을 받은 미군 첼시 매닝 일병의 석방 요구 등이다.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연제헌 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는 “가해자들에게는 무언의 압박을, 피해자에게는 혼자가 아님을 알리는 데 손편지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말했다.
편지쓰기 마라톤은 1961년 포르투갈에서 시작됐다. 정치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수감되자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포르투갈 정부에 항의 편지를 보내자”고 신문에 기고하면서 촉발됐다. 고양시의 ‘편지쓰는 인권마을’은 2010년 12월 생겼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첫 발을 디뎠고 2011년 고양 동녘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편지쓰는 인권마을’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에는 경기 안산시, 인천광역시 등 인근 지역 종교단체들이 합류했고 지난해에는 고양 지역 시민ㆍ사회단체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편지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써도 되지만, 이왕이면 한글이 더 좋다. 수취인에게 “다른 많은 나라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치성을 배제하기 위해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다룬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날도 어린이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며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다.
편지쓰기 마라톤은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었다. 2012년 과테말라에서 성폭행 당한 뒤 숨진 15세 소녀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수십만 통의 인권 편지가 답지하자 결국 과테말라 정부는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고 여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 부서도 설치했다. 2013년 살던 집에서 쫓겨난 뒤 주거권 확보운동을 벌이다 체포된 욤 보파(캄보디아)씨는 보석 석방됐다. 같은 해 멕시코 연방 검찰에 수감중인 미리암은 편지 덕분에 인정받지 못했던 법적 ‘보호조치’를 보장받게 됐다.
앞으로는 ‘인권 평화 카페’를 설립해 1년에 한번이 아닌 상시적으로 인권 편지를 쓰는 게 꿈이다. 또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이다.
김경환 동녘교회 목사는 “세계 곳곳에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을 위한 편지 운동이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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