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가입 1950만명 데이터 이용
교차 영업 가능하고 현금 유입 효과
장기ㆍ일반 보험 수익으로 적자 메워
최근 15년간 무려 10조원 가까이 손해만 보는 산업이 있다. 간혹 흑자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규모만 다를 뿐 매년 적자 연속인 사업이지만 회사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사업을 계속 끌어안고 있다. ‘자동차보험 미스터리’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사업은 2000년 이후 올해까지 단 한 해도 예외 없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쌓이게 될 누적적자는 9조~10조원. 2010년 1조5,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적자에 이어 올해도 1조원대 적자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손보사들은 매년 “손익분기점을 훨씬 웃도는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지급된 보험금의 비율)이 문제”라며 보험료 인상을 주장한다. 70% 초반이 적정수준으로 알려진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최근 3년간 83.4%(2012년), 86.8%(2013년), 86.0%(올 9월 현재) 등 80%를 크게 웃돈다.
하지만 손보사들이 골칫덩이 사업을 끌어안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동차보험의 시너지 효과다. 의무보험 성격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1,950만명의 고객 데이터를 이용해 다른 보험 영업의 토대로 사용하는 무형의 ‘교차영업 효과’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1년 주기로 순환되는 자동차보험의 현금 유입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상당수 자산이 장기 투자에 묶인 상황에서 자동차보험은 단기 유동성의 조달 창구로 유용하다. 여기에 설계사, 손해사정 인력, 협력 자동차정비업체 등 방대한 인력과 자산이 자동차보험에 연계돼 있어 적자가 난다고 쉽사리 정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손보사들의 얘기다.
실제 대형사들은 자동차보험의 적자를 다른 보험영업으로 메우는 구조로 운영된다. 2010년 이후만 봐도 자동차보험 적자는 매년 4,000억~1조5,000억원에 달했지만 손보업계는 2조원 이상 순이익을 냈다. 장기보험과 일반 손해보험에서 자동차보험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진짜 죽을 맛인 건 자동차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악사손보, 더케이손보, 하이카다이렉트 등 이른바 자동차보험 전문사들이다. 자동차보험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지만 만회할 방법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독일계 에르고그룹처럼 국내 사업을 철수하고 싶어도 워낙 많이 물려있는 탓에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정부의 보험료 인상 억제정책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형적인 만성적자 구조는 부작용도 심하다. 기승도 보험개발원 수석연구원은 “손보사의 전체 수익구조를 보면, 일반ㆍ장기보험 고객이 자동차보험 고객을 배 불리는 구조”라며 “보험 고객 간 형평성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보험사기를 막지 못하는 현행 제도가 과잉 수리ㆍ진료를 하지 않는 고객만 갈수록 바보로 만드는 등 사회 전체의 경제정의를 해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상품 다양화를 통한 경쟁이라는 정공법은 미뤄두고, 당국과 업계가 보험료 수준을 놓고 남 탓만 하고 있는 현실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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