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이라도 의학적으로 ‘성 주체성 장애’를 겪고 있다면 여성 호르몬 주사를 투약한 행위를 병역기피로 간주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22)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김씨는 중학생 무렵부터 자신이 여성스럽고 남자를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 고등학생 때부터 성 소수자 카페에 가입한 후 성인 남성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이를 모르는 어머니가 자원입대를 신청해 김씨는 2011년 9월 입대했으나 “남자를 좋아한다”고 토로, 입영 이틀만에 귀가 조치됐다.
이후 김씨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아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되면 입영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고 10개월 동안 병원에서 17회 이상 성호르몬 투약을 받아 병역의무를 면제받으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병역의무를 기피하려고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는 취지의 병역법 86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김씨가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성전환 수술을 고민하는 등 생물학적 성에 불만을 갖고 성 전환증의 증상도 있어 그냥 동성애자가 아닌 성 정체성 장애를 가진 것이다. 김씨의 어머니가 ‘김씨가 활달하고 리더십이 있었다’고 한 점은 여성성과 배치된다고 볼 수 없어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없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단순히 군생활이 고통스러워 약 1년간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남성성을 버리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6조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전환 수술 등) 신체 훼손이 아니라 호르몬 주사 투약과 관련한 병역법 위반 혐의로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학적으로 성 정체성에 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라면 호르몬제 투약을 병역회피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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