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분실 경찰이 전달 가능성 있지만 세계일보 출처에 함구 추측만
정윤회 문건 포함 여부 불명확, 제3의 인물 개입되어 있을 수도
100여쪽의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경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 수사와 청와대 조사, 당사자 주장을 종합해 보면 박관천(48ㆍ전 청와대 행정관) 경정이 청와대에서 들고 나온 문서가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경찰관들을 통해 시중에 유출돼, 박지만 EG 회장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청와대로 되돌아간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가 어떤 경로로 이 문건을 입수했는지 핵심적인 연결 고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2일 “(유출) 과정의 핵심은 청와대에서 박 경정이 문건을 가지고 나왔다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우선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라면박스 두 개 분량의 문건을 유출했다는 건 기정사실이라는 것. 박 경정은 “청와대를 나올 때 (박지만 관련) 문건은 가지고 가겠다고 했고,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를 구두로 허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메모만 한 것으로 알았고 문서를 들고 나갔는지는 몰랐다”고 부인하고 있다.
정보분실에 보관돼 있던 문서들은 분실 소속 최모 경위와 한모 경위가 박 경정 몰래 복사해 빼돌렸고, 이 중 일부를 한화그룹 대관업무 담당 직원에게 유출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최 경위와 한 경위에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이 같은 사실을 검찰이 파악했다는 의미다.
세계일보도 정보분실 경찰을 통해 문건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일보는 문건의 출처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다만 시중에 돌던 문건들이 5월 세계일보에서 박지만 회장을 거쳐 청와대로 회수된 과정은 당사자들에 의해 드러났다. 세계일보는 “5월 12일 박 회장을 만나 문건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세계일보 기자와 측근 전모씨를 함께 만난 것으로 알려졌고, 조 전 비서관은 “기자와 박 회장의 회동을 (내가) 도와줬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 측에 문건을 건네며 유출 경위 파악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에서는 조사를 거부했다. 이에 조 비서관은 문서 사본을 자신의 측근인 청와대 오모 행정관을 통해 조사를 요구하면서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 비서관이 전달한 문서 사본도 세계일보에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 박 경-정보분실-세계일보-조 전 비서관-청와대라는 100여쪽 문건 유출 경로에 포함됐는지 여부가 불명확하다. 검찰은 뭉텅이 문건 유출보다 정윤회 문건의 유출 경로 파악이 수사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어떤 식으로 언론보도로 이어졌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박 경정, 정보분실 경찰, 혹은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보도한 기자가 누구에게 받은 것이다 말해주면 참 쉬운 수사일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수사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박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문서들을 옮긴 것 외에 언론 유출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 박 경정은 “유출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문서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분실 소속 경찰관들이 문서를 유포한 것을 뒤늦게 알고 일부를 회수한 후 청와대 측에 알렸다고 검찰 조사에서 주장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렇다고 박 경정이 문서 유출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검찰은 박 경정이 분실 소속 두 경찰관과 공모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 경정이 직접 언론과 접촉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세계일보가 ‘청와대 행정관 5명의 비위가 적발됐지만 처벌받지 않고 소속 기관으로 복귀했다’는 보도를 했을 당시, 박 경정과 해당 기자가 접촉한 흔적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검찰은 청와대로부터 조응천 전 비서관이 ‘7인 모임’을 통해 문건을 허위 작성하고 유출에 관여했다는 감찰 자료를 넘겨 받아 또 하나의 부담스런 숙제를 떠안게 된 상황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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