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이 구멍가게에서 장난감을 훔친 걸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마다 다른 조언을 하겠지만, 2대에 걸쳐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부시 가문이라면 ‘애를 가게로 혼자 보내 잘못을 사과하게 한 뒤 더 이상 재론하지 않는 것’이 해법이다.
미국에서는 ‘부시 왕조’(Bush Dynasty)라고도 불리는 부시 집안의 이런 가정사는 ‘41’이라는 책에 실려있다. 이 책은 최근 퇴임한 대통령으로는 드물게 회고록을 쓰지 않은 41대 대통령 아버지(조지 H. 부시ㆍ91)를 위해 아들 조지 W. 부시(68) 43대 대통령이 지은 것인데, 최근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논픽션 단행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당연히 시종일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옹호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치욕에 가까운 아버지 부시의 재선 실패에 대해, 아들 부시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전후 선거에서 패배했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도 4년 재임 중 훌륭한 업적을 냈다”고 지적했다. 또 2차 대전 참전 용사, 텍사스 석유업계의 큰 손, 연방 하원의원, 유엔 주재 미국대사, 미ㆍ중 수교전 베이징 연락사무소장,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부통령 등을 지내면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겪은 좌절과 영광의 순간을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일부의 주장과 달리, 재임 중 이뤄진 ‘테러와의 전쟁’은 아버지 부시의 입김이 완전히 배제된 채 오로지 그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관련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하던 2002년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아버지가 해준 말은 ‘너는 전쟁의 잔학상을 잘 알고 있을 테니, 숙고한 뒤 결정하라’는 게 전부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평소 언론에 가정사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온 부시 가문의 내면이 평이한 문체로 자세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의 서평에 따르면 ‘41’에는 부시 가문의 일원이지만, 세 살 때 백혈병으로 사망한, 아들 부시의 여동생 로빈 부시 사연이 최초로 공개됐다. 이 책에서 아들 부시는 “당시 아버지는 딸을 고치기 위해 만사를 포기한 채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한편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고 기록했다.
아들 부시가 여섯 살 꼬마시절 병정 인형을 가게에서 훔쳤다가 되돌려 준 것 이외에도, 20대 군복무 시절 아버지 주선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과 데이트한 사연도 흥미를 끈다. 1960년대말 텍사스 주 방위군에서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던 아들 부시는 워싱턴에서 트리샤 닉슨과 만났는데, 허세를 부리다가 식탁의 와인 잔을 깨고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단번에 퇴짜를 맞았다.
아들 부시의 효성을 보여주듯, 이 책은 장례절차를 논의해야 할 정도로 위중했던 아버지 부시가 2013년 병석에서 일어나 아들 부시 이름을 딴 도서관 준공식에서 큰 소리로 환영사를 하는 장면 등을 감동적으로 소개하며 끝을 맺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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