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 둘러싼 섬들 천혜의 조건...미국 FDA도 인정하는 청정해역
탄력 있는 육질, 굵고 모양새 선명...당분 많아 타 지역산보다 인기
주민 3만여명 종사하는 '굴 산업'...年 4만여톤 생산...수출도 급증
올망졸망 섬들이 모인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그림처럼 펼쳐진 섬무리는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일찍이 한려수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청정해역 국립공원의 한가운데에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인 경남 통영이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인 통영은 우리나라 제일의 미항이란 뜻으로 ‘동양의 나폴리’로 불린다. 일부 주민들은 그 찬사가 성에 차지 않는지 ‘통영이 동양의 나폴리가 아니라 나폴리가 서양의 통영’이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해양관광과 더불어 통영을 대표하는 수산업은 외국산 수산물 수입이 급증하면서 다소 후퇴했지만 여전히 통영 전체 산업의 60%를 떠받치고 있는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통영 일대 바다는 수심이 얕은 리아스식 해안으로‘바다목장’의 최적지로 꼽힌다. 어종도 다양해 철마다 싱싱한 먹거리가 넘쳐난다. 봄 도다리, 여름의 멸치와 장어, 가을 전어와 방어, 겨울 굴과 물메기 등 철 따라 통영을 대표하는 미식거리가 줄을 잇는다.
통영의 겨울은 단연 ‘굴의 계절’이다. 전국 굴 생산량의 70%를 통영이 차지한다고 한다.
바다와 항구엔 굴을 따는 어민들과 굴을 까는 아줌마들로 넘쳐나고, 도심 굴요리전문점은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제철을 맞은 굴이 통영의 겨울을 지배할 무렵, 통영의 겨울바다 색은 파랗지 않고 하얗다. 바닷물 속에 자라고 있는 굴을 지탱하는 하얀색 스티로폼이 빽빽하게 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눈가루를 바다 위에 뿌려 놓은 것 같다. 3∼4m간격으로 떠서 바다를 온통 하얗게 뒤덮고 있는 스티로폼의 긴 행렬은 이곳이 바로 굴 어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통영굴수협 지도선을 타고 동행 취재에 나선 최정복(66) 굴수협 조합장은 끝없이 펼쳐진 굴양식장을 가리키며 물 위에 떠있는 스티로폼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굴의 생육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티로폼의 떠 있는 정도에 따라 바닷물 속에 매달려 있는 굴의 크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통영의 청정해역은 겨울에도 바닷물의 온도가 크게 내려가지 않고 해안선이 꼬불꼬불하면서도 먼 바다에서 들이치는 큰 파도를 겹겹이 진을 친 섬들이 막아줘 늘 바다가 잔잔하다. 또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지 않아 바닷물 속에 굴을 매달아 두기가 쉽다.
이렇게 물속에 매달아 굴을 키운다고 해서 통영의 굴은 ‘수하식 굴’이라 불린다. 물 속에 길게 늘어뜨린 줄에 포자를 붙여 키우는 방식이다.
매년 4,5월 굴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종패를 만드는 일을 시작으로 6∼8월 굴이나 가리비 껍질에 유생을 붙이는 채묘를 마친다. 채묘를 마친 어린 굴은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해안가에 매달려 어느 정도 단련된 뒤 다음해 봄 어장으로 옮겨져 바닷물 속에 잠겨 각종 영양염류를 섭취, 알이 굵고 선명하면서 육질의 탄력성이 좋은 통영굴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키우는 통영의 굴은 인공으로 부화를 하고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닷물에서 영양분을 빨아 들이기 때문에 양식이어도 그냥 양식이라고 하기 애매하다. 억센 억양의 통영 사람들은 굴을 ‘굴’이 아닌 ‘꿀’이라 발음한다. 실제 통영굴은 당분 함량이 5%로 다른 지역(2∼3%)에 비해 훨씬 높아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싱싱한 통영의 생굴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오전 5시 어둠을 가르며 바다목장에 도착한 어선은 컨베이어시스템으로 된 굴 채취기를 통해 굴이 매달린 줄을 연신 끌어 올린다. 이렇게 건져 올린 굴은 오전 11시쯤 인근 뭍에 있는 굴까기 공장(박신장)으로 옮겨진다.
박신장에서는 공장의 제조라인처럼 굴더미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선 50∼6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숙련된 수작업으로 굴 껍질을 까 알굴을 발라낸다. 통영에선 굴까기도 거대한 산업이다. 굴까기 작업에 참여하는 아줌마들만도 2만명에 달한다. 굴수협은 굴까기에 종사하는 아줌마들의 인건비 공시제를 도입했다. 굴을 까는 양에 따라 노임을 주는 시스템으로 숙련된 아줌마들은 ‘한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알굴은 세척작업을 거쳐 굴수협 위판용기(20㎏)에 담겨져 오후 1시와 6시 하루 두 차례 열리는 굴수협위판에서 중도매인들의 손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통영굴수협 위판장에는 33명의 중매인들이 경매를 통해 생굴을 대도시로 유통하고 있다.
통영굴의 경쟁력은 청정해역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품질 및 오랜 연륜에서 나온 뛰어난 가공기술과 철저한 위생관리에서 비롯된다. 특히 굴 주산지인 통영, 남해 등 남해안 일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청정해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1972년 ‘한ㆍ미패류위생협정’에 따라 197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국내 최초로 지정한 한산만 해역 등 5개 해역 2만5,849㏊가 그 대상이다.
FDA 지정해역은 경남이 전국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2∼4년 주기로 미국에서 전문가들이 직접 찾아와 위생점검을 실시한다. FDA현장점검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미 굴 수출이 전면 중단된다. 실제 FDA는 2012년 5월 지정해역에서 식중독 원인균인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한국산 굴 등 패류 수입을 금지했다가 재점검을 거쳐 9개월 만인 지난해 2월 해제한 바 있다.
위생검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통영굴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일본은 통영굴이 수출되는 세계 10여개국 중 제1위 수출국이다.
경남도와 통영시, 통영굴수협 등은 어선에서 발생하는 분변 등 오염원 차단을 위해 이동식 화장실을 보급하고, 바다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안정성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정해역에는 이 같은 바다 공중화장실 6곳과 3,000여개의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통영시는 이례적으로 어업진흥과에 ‘지정해역관리 태스크포스(TF)팀’을 두고 지정해역에 대한 365일 점검체계를 구축했다. TF팀은 지정해역 오염도와 오염 유입원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각종 점검결과의 기록화와 보완계획 수립 등을 맡고 있다.
또 통영굴수협도 국립수산과학원의 위생검사와 별도로 생굴과 바닷물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자체 검사실을 운영하는 한편 매일 어장과 박신장, 위판장 등에서 위생검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이중 삼중의 위생관리 안전망을 거쳐 식중독균 등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무결점’굴만 위판장에 나오게 된다.
FDA는 내년 2월쯤 지정해역 현장점검을 나설 예정이다. 수출중단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어민들은 2013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한 상태다. 행정당국과 굴수협을 중심으로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숫자로만 놓고 볼 때 굴이 통영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통영의 굴산업은 연평균 생산량 4만여톤(2,000억원)에 종사자는 2,000여명의 어민과 굴까기 종사자 등을 합쳐 3만여명에 달한다. 수출도 지난해 9,860톤(7,016만4,000달러)를 기록했으며 지난해부터 중국 수출이 급증하고 있어 수출물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굴은 매년 10월 중순 초매식을 시작으로 다음해 4월말까지 생산되고 있으며 굴수협은 매년 3월 통영에서 어업인들과 관광객들이 함께하는 한마당 축제인‘한려수도 굴 축제’를 열어 무료 굴요리 시식회와 다채로운 공연을 통해 통영굴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통영굴은 굴밥과 굴국, 생굴회 등 고전적 레시피에다 굴깐풍, 굴탕수, 굴라면 등 톡톡 튀는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되면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중국시장 개척에 나서 자신을 ‘굴시장’이라고 소개했었던 김동진 통영시장은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굴 생산과정의 철저한 위생관리와 함께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 등으로 굴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통영=이동렬기자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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