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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푸틴과 루블화 위기

입력
2014.12.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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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단숨에 권력을 거머쥔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는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이다. 태국과 한국 등을 휩쓸었던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진이 1997년 가을부터 서서히 러시아를 흔들기 시작했다. 신흥국 경제 불안감이 이전되며 러시아 경제에 대한 의구심이 급속히 증폭됐다. 당장 러시아 수출의 70%를 차지하던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가운데, 총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 상황이 새삼 부각됐다.

▦ 막대한 외채로 당시 러시아는 매주 15억달러의 대외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렸다. 게다가 유가 급락에 따라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한데다, 재정적자마저 국내총생산(GDP)의 7%선에 이르러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마침내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규모 엑소더스가 발생했다. 97년 말부터 98년 초 사이에 러시아 국채시장에서만 약 7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정정불안까지 증폭되면서 7월말부터는 단기국채 이자율이 300%까지 치솟고, 루블화가 폭락하는 금융위기에 돌입했다.

▦ 보리스 옐친 정부는 결국 98년 8월 17일 외채 상환을 90일 동안 유예하는 모라토리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다행히 서방이 어쩔 수없이 모라토리엄을 수용해 국가부도는 피했지만, 옐친 정부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추락했다. 그러잖아도 체제 전환 후 시장경제 개혁 실패와 부패 등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고 있었다. 급기야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옐친 대통령이 그 해 12월에 돌연 사임을 발표하자, 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거쳐 총리로 발탁된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부상한 것이다.

▦ 경제위기를 타고 혜성처럼 집권해 현대판 차르(제정러시아 때의 황제)로까지 불리게 된 푸틴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요즘 집권 때와 비슷한 경제위기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유가가 폭락하면서 루블화가 연초 대비 40% 가까이 폭락하는 판박이 금융위기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러시아 외무차관은 어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 제재와 유가 폭락을 일으켜 푸틴 정권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푸틴 정권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주목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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