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소설가 형으로부터 나무로 만든 밥그릇을 선물 받았다. 가볍고 질감도 좋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던 중, 그릇에 또다시 눈길이 갔다. 반질반질 윤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밥그릇에 담는 상상을 하니 문득 출출해졌다. 며칠 뒤, 친한 소설가 누나가 상을 받는다고 해서 선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릇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릇 파는 데에 가니 절로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기, 유리, 나무, 돌 등 그릇의 소재가 무척이나 다양했다. 접시나 컵 등 그릇의 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그릇임을 잊고 지냈던 물건들을 발견하고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이처럼 그릇에는 깊이와 넓이가 둘 다 필요하다. 수많은 그릇들 중 하나를 골라 곱게 포장하고 누나에게 편지를 썼다. “누나, 이미 그릇을 많이 가지고 있을 테지만 여기 새 그릇을 하나 선물해. 아직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을 때 그릇은 가장 근사한 것 같아.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자꾸 상상하게 되니까. 상상하면서 설레게 되니까. 앞으로 누나가 빈 그릇에 음식을 담듯, 빈 종이에 담을 소설을 생각하니 문득 가슴이 벅차 오른다. ‘아직’이 주는 힘을 믿읍시다. 믿고 씁시다.” 이 말은 누나한테 하는 것이었지만 내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왜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양의 그릇일까. 그 그릇에는 무엇이 담기게 될까. 빈 그릇처럼 한동안 두근거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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