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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있으면 존경받죠… 임금도 대졸과 비슷"

입력
2014.12.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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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술 가졌느냐가 임금 결정 "대부분 빨리 기술 배워 취업 원해"

건설·호텔 등 12개 분야 직업교육 "아이들 적성·흥미 쉽게 변해"

지난달 27일 스웨덴 룬드자동차기술고등학교 실습실에서 자동차 정비 실습을 하던 리누스 앤더슨(왼쪽부터)군, 베니 엔더슨 교사, 올라 쇼버그군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스웨덴 룬드자동차기술고등학교 실습실에서 자동차 정비 실습을 하던 리누스 앤더슨(왼쪽부터)군, 베니 엔더슨 교사, 올라 쇼버그군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스웨덴 남부 도시 룬드의 룬드자동차기술고등학교. 대형 자동차 정비공장을 방불케 하는 300㎡ 규모의 2학년 실습장은 르노, 사브(Saab), 혼다의 차량으로 가득했다. 실습장 한가운데에는 혼다의 경주용 자동차 차체 앞부분이 악어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자동차에 달라붙어 엔진과 타이어를 뜯어냈다. 2학년 리누스 앤더슨(17) 군은 “고장 난 차량을 기증 받았는데 구조가 생소해 분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보란 듯이 고친 뒤 연습용 차로 되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3학년 실습실에서는 학생들이 사브의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수리하느라 한창이었다. 폰투스 패트릭(18) 군은 “어제 저녁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수리 의뢰가 들어왔는데 뜯어보니 뒤 차와의 간격을 재는 센서가 고장 나 바꿔 낄 예정”이라며 “어떤 차량도 가져오면 당장 고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학교ㆍ기업ㆍ정부가 뭉쳐 숙련된 기술자 양성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은 학벌을 쟁취하려 무한경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스웨덴은 고등학교에서 탄탄한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기업들은 고졸자에게 좋은 대우를 보장해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다. 1666년 설립돼 스웨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룬드 대학의 요한 구나슨 입학실장은 “대학 진학률이 40%대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대학은 말 그대로 공부를 하러 오는 곳”이라며 “고등학교가 취업 교육을 담당하고 대학은 학문 교육을 담당하는 체제가 굳건하게 정착됐다”고 말했다.

스웨덴 직업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고려해 설계됐다. 건설, 자동차, 호텔, 레스토랑 등 12개로 분화돼 흥미와 적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업계고(마이스터고ㆍ특성화고)에서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일반고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이 실시되지만, 스웨덴에서는 한 고등학교 내에서 진학 교육과 직업 교육 과정이 동시에 제공된다. 카트리나 달버그(46) 룬드자동차기술학교 교장은 “학령기 아이들은 적성과 흥미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전과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기술분야에 특화된 이 학교에도 대학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이 있지만 숫자는 많지 않다.

직업교육의 전문성도 철저히 보장된다. 우리나라 실업계고의 현장 실습은 취업 직전인 3학년 2학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지지만, 스웨덴은 모든 직업교육에서 3년 동안 15주 이상의 현장 실습을 의무화했다. 2학년 리누스 앤더슨 군도 이번 겨울 룬드 시내의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직업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스웨덴은 직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도제 교육’ 제도를 도입, 신청 학교들을 대상으로 전체 교육 과정의 절반(50주)을 기업체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기업들의 지원도 풍성하다. 달버그 교장은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자동차, 부품, 기계 회사들은 50여 개에 달하며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차량과 정비기계 제공은 물론, 최신 기술에 대한 교육도 지원한다”며 “스웨덴은 정부와 기업, 학교가 똘똘 뭉쳐 학생들을 ‘숙련된 기술자’로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능력중심의 문화로 학력 차별 없어

2학년 올라 쇼버그(17) 군의 장래 희망은 자동차를 도색하는 페인터다. 아버지와 형 모두 자동차 정비사인 쇼버그 군은 어릴 때부터 차량 정비소를 드나들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는 “7가지 색을 이용해 차량을 도색 하는데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색이 천차만별”이라며 “낡은 차를 산뜻한 새 차로 변신시키는 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쇼버그 군이 자동차회사에 입사하거나 차량 정비소에 취업할 경우 최소 임금은 월 260만원(1만7,500크로나) 수준이다. 룬드자동차기술학교의 베니 엔더슨 기술 교사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자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학생들은 고졸자에 대한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에 특별히 공부에 흥미가 있는 게 아니면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빨리 취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임금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졸자 임금은 고졸자에 비해 1.82배 높았고, 영국 (1.64배)과 고졸 취업이 활성화된 핀란드(1.57배)도 임금 격차가 컸다. 반면 스웨덴의 대졸자 임금 소득은 고졸자의 1.35배에 불과해 ‘대졸자 프리미엄’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1.61배로 임금 격차가 최상위권이었다.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다. 앤더슨 군은 “아버지는 대졸자이지만 자동차기술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하겠다고 하니 ‘집에 기술자가 있어 든든하다’며 좋아하셨다” 고 말했다. 달버그 교장은 “고졸ㆍ대졸을 막론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기술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며 “스웨덴에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존경 받고 대우받는 사회”라고 말했다.

재취업 가능케 하는 평생교육시스템

직업교육은 고등학교를 졸업 이후에도 이어진다. 스웨덴 정부는 성인들에게 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2009년 7월 1~2년 과정의 ‘직업대학’을 설치했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227개의 직업대학이 간호, 건설, 판매, IT등의 직업교육을 제공하며 학비는 모두 무료다.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9.5세, 졸업 후 취업률은 90%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직업교육은 열악한 수준이다. 2012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 성인의 직무관련 평생학습참여율은 6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지만 우리나라는 10.5%로 꼴찌 수준이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학벌 추구형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을 갈 때까지만 사교육에 집중 투자하고 취업 이후 능력개발을 위한 투자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며 “노동시장의 단절적 구조를 극복하려면 직업 교육을 강화해 능력중심형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룬드(스웨덴)=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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