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언론 문건 입수부터 역추적… 중간 과정서 경찰정보관 연루 포착
또 다른 보고서 무더기 외부 반출… 정보1분실 아닌 곳에 따로 보관
검찰이 9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경찰관 2명을 체포하고 한화그룹 대관업무 담당 직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보고서들의 외부 유출 경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ㆍ전 청와대 행정관) 경정이 세계일보 기자들에게 직접 문건을 전달했다기보다는, 중간 과정에 다른 경찰 정보관들이나 민간기업 정보팀 직원 등이 연루돼 있었던 것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의 수사의뢰에 따라 문건 유출 경위 파악에 나선 검찰은 ‘역추적’ 방식을 따랐다. 유출의 시작점인 청와대가 아니라, 종착점인 언론이 누구로부터 청와대발 문건을 입수했는지를 거꾸로 되짚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4월과 7월, 청와대 행정관ㆍ비서관의 비위 의혹에 이어 지난달 28일 비선실세로 불리는 정씨의 동향 보고서 내용을 잇따라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2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일부 정보관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VIP 방중 관련 현지 인사 특이동향 보고’ 등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보도하면서 해당 문건들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두 언론에 문건이 유출된 부분에 대해 확인 중”이라며 “문건을 제공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거꾸로 수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정보1분실 소속 최모ㆍ한모 경위 등 2명의 혐의를 잡았다”고 말했다. 한화그룹 직원 A씨에 대해선 “청와대 문건을 (경찰관한테서) 받은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내부 문건이 언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전달자’ 역할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의 정윤회 문건이 이 경로를 통해 유출됐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검찰은 해당 문건뿐 아니라 또 다른 청와대 내부 보고서들이 무더기로 외부에 반출된 부분을 모두 수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만 놓고 보면 2월 박 경정의 청와대 파견 해제 무렵, 정보1분실에 1주일간 보관해 뒀던 박스 2개에는 일반 공직자 감찰과 관련한 문서들만 담겨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경찰 내부에서 중복 보고가 돼 문제를 일으켰던 광역단체장 K씨의 비위 첩보 등이다. 최 경위와 한 경위, A씨의 ‘역할’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정씨 동향 보고서 유출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도 살펴 보는 중”이라고만 밝혔다. 한화 관계자는 “A씨의 경우 (체포된 최 경위 등과의) 통화 내역 외에는 특별한 게 전혀 없고, 정윤회씨 관련 문건을 입수하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오히려 박 경정이 정윤회 문건 등 대통령 친인척ㆍ측근 관련 문서들은 정보1분실이 아니라 따로 보관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개될 경우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킬 만한 민감한 문서들은 ‘보안’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제3자에게 맡겼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경정이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국가정보원 직원, 박지만 EG 회장 측 인사 등과 가졌던 모임에서 문건이 유출됐을 수도 있다고 보고 모임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박 경정은 “정윤회 문건 출력본을 갖고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에서 도난을 당했고 이로 인해 유출됐다는 증거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는 상태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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