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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佛 공무원 평가 기준은 적성과 인성… 학력 제한 없이 고위직 임용

입력
2014.12.0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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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과목 고집하는 나라 드물어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뒤 1999년 스웨덴 국립교육청의 장학관으로 임용 돼 2011년까지 스웨덴 정부특수재정국장을 역임한 황선준(57) 경기도교육청 초빙연구위원은 “스웨덴 교육청에 채용될 때 내가 가진 것은 여권뿐”이라고 말했다. 이력서와 석사 논문 만으로 임용됐다는 뜻이다.

전세계에서 공무원을 임용하는 데 우리나라와 같은 암기형 필기시험을 고수하는 곳은 많지 않다. 스웨덴에서는 공무원 임용 시 공개 채용을 통해 업무 적합성과 조직 적응 능력 등을 평가한다. 통계를 다루는 부서의 경우 실무와 관련된 문제를 따로 만들어 풀게 하지만 암기형 시험으로 지원자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황 연구위원은 “스웨덴에서는 주로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정책 평가와 연구 등을 맡는 공무원으로 임용되긴 하지만 학벌이라는 개념은 없다”며 “지원자가 쓴 논문과 실무 능력을 검증해 공무원을 채용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고위공무원을 선발할 때 암기형 문제보다는 대상자의 적성과 인성을 포함한 종합 역량을 평가한다. 대학졸업 등 학력 조건이 제시되긴 하지만 공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지표 중 하나로 볼 뿐이다. 실무 경험이 있는 일반 공무원은 학력 제한 없이 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되기도 한다.

영국은 일반공무원과는 별도로 250명 정도를 선발해 조기승진 기회를 주는 속진 임용제를 운영한다. 대졸자나 근무경력 2년 이상인 일반 공무원 중 해당부처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 응시 대상이다. 언어ㆍ수리ㆍ분석 능력 등을 평가하는 1차 시험과 2일간의 공무원인사위원회 면접을 통해 최종합격자가 가려진다. 지원자의 대인관계와 적성까지 다면 평가가 이뤄진다. 영국의 속진 임용 시험은 1년에 3회 치러져 기회가 많은 편이다.

미국의 고위공무원 임용은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PMI)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진다. 석사학위자나 대학원 졸업을 앞둔 사람 중 각 학교에서 추천 받은 지원자들이 면접 등을 거쳐 2년간의 인턴십 기회를 갖는다. PMI 과정은 강의식 교육이 아닌 토론, 현장 연수, 사법ㆍ입법부를 포함한 정부부처의 순환보직 경험 등으로 진행된다. PMI는 연방정부공무원이 될 수 있는 지름길로 인식되지만 실습기간 2년을 마치더라도 해당 부처와 계약이 되지 않으면 정식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프랑스는 까다로운 입학 시험으로 ‘대학 위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립행정학교를 통해 고위공무원의 선발과 교육이 이뤄진다. 공공행정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으면 고졸자라도 내부경쟁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실제로 합격자의 10%는 고졸자다. 국립행정학교는 파리정치대학 출신이 합격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입학과 졸업시험은 암기력이 아닌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하고 수업도 실무와 세미나 위주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고시제도와 같은 암기형 시험은 실무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시험만 잘 보는 사람들이 고위공무원직에 오르면서 학벌구조가 공고화되고 공직자의 윤리성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고시 합격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생각이 선민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는 “고시제도를 없애되 현실적으로 시험이 필요하다면 7급, 9급 공무원을 뽑고 현장에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발탁해 고위공무원으로 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종섭 대전대 교수(행정학)는 “갑작스런 고시 폐지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시험에서는 사고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민간경력자 공개채용 등과 혼합해 단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진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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