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래 벌써 네 차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정부의 우리은행 지분매각 실패는 정부가 내세우는 ‘민영화 3대 원칙’에 이미 내포돼 있는지도 모른다. 세 원칙 중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와 ‘빠른 민영화’가 금융산업이 침체에 빠진 현재 상황에서 당최 양립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값을 비싸게 부르고 있으니 시장엔 번번이 찬바람만 분다. 민영화의 또다른 원칙인 ‘금융산업 발전’은 그저 난망할 뿐이다.
겉으론 세 원칙을 공평하게 대한다고 하지만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우선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찰자 2명 이상’ 조건도 못 채우고 무산된 경영권지분 매각과 달리, 1.32대 1의 입찰경쟁률을 보이며 잠시나마 흥행 기대를 품게 했던 소수지분 매각이 낙찰률 33%에 그친 과정이 그 증거다. 금융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낙찰 기준가인)예정가격을 결정하는 와중에 입찰자들이 써낸 가격 수준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량을 전량 매각하려면 예정가격을 최저 입찰가 밑으로 결정해야 했겠지. 그렇지만 헐값 매각을 하면 안된다는 원칙에 따랐다. 그 정도로까지 팔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적자금 회수라는 대의 앞에 나머지 두 원칙은 부차적일 따름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의 굳은 의지가 관철됐음에도, 아니 관철될 때마다 공적자금 회수는 점점 멀어져 간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주당 2만2,750원씩, 총 9,170억원 규모의 우리은행 지분을 부분매각하며 기세를 올렸던 2007년 6월에 비해 주가는 정확히 반토막 났다.(8일 종가 1만750원) ‘빠른 민영화’ 원칙을 등한시하다가 보유지분 가치의 절반을 날린 셈이다.
이뿐 아니다. 10여 년 전 정부가 5개 부실은행을 우리은행의 이름으로 인수합병할 재원 12조8,000억원을 마련하려 발행한 채권의 누적이자가 어느새 6조원. 이번 소수지분 매각을 포함해 정부가 우리은행에서 회수한 공적자금 규모 6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찔끔찔끔 지분 팔아 거둔 돈을 죄다 이자 물어주는 데 쓴 셈이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선언을 농담처럼 만드는 이 형편없는 실적에는 현재가치 개념이 반영되지 않았다. 일찍 팔았다면 매각수입에 차곡차곡 붙었을 이자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다.
당국 수장이 “직을 걸겠다”던 비장함은 어디 가고, 지분매각 실패 후 정부가 취한 첫 조치는 생뚱맞게도 연말 취임하는 우리은행 신임 행장의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인 것이다. 향후 2년 내 은행 민영화를 완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다. 현 행장의 임기를 반토막 냈던 이유와 같다. 역사는 돌고 돈다더니 우리은행 민영화 역사가 딱 그렇다. 눈앞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공무원 사회 특유의 보신주의 속에 종국엔 잔혹사로 기록될 참이다.
이훈성ㆍ경제부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