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잠꼬대를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들의 마음 한구석을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 그런 것처럼 잠꼬대에도 정보가 있다. 왜곡된 것이라 잘 가려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불쑥 튀어나오는 단어나 문장들을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해바라기가 되었다는 둥 꽃노래를 부를 때가 있다. 꿀벌이나 나비가 되기도 한다. 꼭 사고 싶은 게 있는지 마트 간다고 한다. 뭔가 먹고 싶다고 야단할 때도 있다. 엄마 싫어, 미워할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내꺼야 만지지마, 절실할 때도 있다. 꿈의 문법에 충실해서 환상과 결핍과 욕망을 드러낸다. 오늘도 잠꼬대를 하는 큰아이를 가만히 다독거린다. 잠꼬대도 내력인지라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 울컥한다. 어느덧 다 큰 아이가 기특해서기도 할 테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잠꼬대를 하고 있을 노모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잠 안자고 보채는 작은 애를 옆에 눕혔다. 누가 제일 좋아,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을 해본다. 당연히 엄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다음이 정말 궁금해서 계속 물었다. 엄마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줄줄이 끌려 나온다. 아빠, 언니, 나, 동생들, 강아지풀 순이다. 좋아하는 것 순위에 ‘나’가 있다. 그것도 네 번째로. 가족들 다음으로 강아지풀이 있다. 세 살은 세 살이다. 꿈속에서 강아지풀로 흔들릴 수가 있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