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논란을 바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박 대통령은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 및 소속 예산결산특위 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 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또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서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문서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던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이 언론보도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하고, 일련의 의혹 제기를 사실상 ‘국정 흔들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으로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인사개입 의혹과 ‘비선 실세’ 사이의 권력다툼 의혹을 차단하기 어렵다. 검찰과 여당에 일종의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다는 논란만 부추기기 십상이다.
우리는 애초에 보도된 문건의 내용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사실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나 최종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건 보도 이후의 후속 보도를 통해 언론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문고리 권력’의 비정상적 인사 개입, 나아가 유진룡 전 장관이 직접 증언한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의 비정상적 경질 절차에 대한 의혹은 분명하게 실체를 밝힐 방법이 있다. 특히 유 전 장관의 증언은 박 대통령 자신의 말이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사실 여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박 대통령이다. 따라서 ‘정윤회 문건’뿐만 아니라 그에 뒤따라 제기된 다른 의혹 모두를 ‘터무니없는 얘기’로 돌리려면, 대통령을 포함한 당사자의 설명과 그 진실성을 뒷받침할 관련 정황이나 물증 제시가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문체부 국장과 과장의 실명을 거론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한 사실이 없음을 밝히지 못하고서는 그의 증언이 거짓말임을 국민에 납득시킬 수 없다.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했던 장관이나 참모와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 자체가 ‘나라 망신’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설명을 생략한 채 무조건 ‘터무니 없는 얘기’라거나 사실무근이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리 없다. 청와대 공식조직을 통해 명백한 반대증거를 내놓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일련의 의혹이 ‘국정 흔들기’이고, 현재의 경제상황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심각한 우려라면 더욱 신속하게 의혹들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정부 부처의 국장과 과장을 직접 손보는 게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심각성을 직시, 적극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