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십상시’ 파문 못지않게 금융권의 신관치(新官治), 정실인사 논란도 심상치 않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지난주 말 차기 행장 후보로 결국 내정설 논란의 당사자였던 이광구 부행장을 선정했다. 이 후보는 1979년 상업은행에서 출발한 정통 은행맨이다. 우리은행에서도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등을 역임해 결격자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시중에선 행추위 전부터 이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이 나온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금회’ 멤버로서 정권의 줄을 타고 차기 행장에 내정됐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져 인선의 권위와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7년 결성된 서금회에 대해 당사자들은 친목모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문직군별 대학 동문모임이 수없이 많은 걸 감안할 때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금회가 정권 차원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의구심은 멤버들의 두드러진 약진 때문이다. 서금회 핵심 멤버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금융권에선 이미 은퇴 원로급인 인사가 올 들어 재차 수출입은행장으로 복귀한 것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이어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내정자 등 다수 금융사에서 서금회 멤버들이 잇달아 부상해 의구심을 키워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 후보 내정설과 관련해 “우리(금융당국)가 먼저 우리은행 행장 후보자를 정하고 그런 경우는 없다”며 “(서금회 논란도)시장에서 만들어진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의혹 정황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강력하게 연임 의지를 밝혀왔던 이순우 전 행장이 갑자기 연임 포기를 선언하면서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외압을 시사했다. 행추위 주변에서도 “이번엔 ‘윗선’에서 내정이 된 채로 행추위에 일방적으로 통보가 내려왔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정권의 금융권 인사 개입이나, 학맥ㆍ인맥 중심의 금융권 사조직이 인사를 독식한다는 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이헌재 사단’부터 이명박 정부 때의 고려대 인맥에 이르기까지, 정실인사가 난무하며 금융권에선 “정권과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없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관피아’와 ‘낙하산’ 척결을 국가개조의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현 정부에서 오히려 심화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현실이다. KB금융 사태와 은행연합회장 인사, 그리고 이번 내정설 파문에 이르기까지 금융권 인사를 둘러싼 최근의 잇단 잡음은 금융산업을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해악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악습의 뿌리를 뽑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내정설의 실체를 확실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