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었는지 대충 정확한 정황 이야기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이 문체부 국ㆍ과장 교체를 직접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어제자 조선일보 보도다. 이에 앞서 한겨레신문은 박 대통령이 당시 유 장관 등을 청와대집무실로 불러 수첩을 꺼내 들고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의 이름을 거명하며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면서 교체를 직접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유 전 장관의 언급은 충격적이다. 지난 7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장관직에서 면직된 그가 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정윤회씨 부부와 관련이 깊어 보이는 문화체육부 국ㆍ과장 인사에 박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이 부처 공식라인이 아닌 실체를 알 수 없는 비공식 통로로 보고를 받고 이를 더 신뢰해 문체부 국ㆍ과장 경질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하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윤회씨 부부가 자신들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문제로 승마협회와 마찰을 빚었고, 이와 관련한 문체부의 조사 결과와 조치에 대한 정씨 부부의 불만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정씨 부부 가운데 누가 직접 전했는지 아니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선(秘線)이 작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유 전 장관은 정씨 측과 반대편이 다 문제가 있다고 보고 양측을 다 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문체부 담당부서가 내자 정씨 측이 “괘씸한 담당자들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점에서 유 전 장관의 언급을 통해 드러난 정황은 요즘 한창 논란의 핵심인 비선정치가 방만하게 이뤄졌음을 뒷받침한다고 봐야 한다. 유 전 장관은 자신과 김종 문체부2차관의 충돌과 관련해서도 “김 차관과 이재만 비서관은 하나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해 권력 3인방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재만 청와대총무비서관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김 차관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문고리 권력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유 전 장관의 언급으로 박 대통령이‘정윤회 보고’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 것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부서 인사는 전적으로 장관의 소관 사항이라며 박 대통령의 비정상적 인사 지시 보도를 일축한 김종덕 문체부장관의 반박 역시 공허한 소리가 됐다. 청와대는 어제도 이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문체부 쪽으로 공을 넘겼지만 이를 납득할 국민은 없다.
이미 둑은 무너졌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어설프게 부인하고 얼버무리려고 하다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문제를 풀어가는 길밖에 없다. 우선 문체부 국ㆍ과장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부터 경위와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