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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 누구 탓인가

입력
2014.12.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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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발표된 통계청의 ‘2014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임금 근로자 1,873만명의 절반이 2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아 살고 있다. 저임금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대체 누구 탓일까. 과분한 임금을 받는 귀족 노동자들 탓이란 게 일각의 매도다. 과연 그럴까. 독식론은 불순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질투를 부추겨 과도한 착취율을 감추려는 사용자 측 의도가 반영돼서다. 임금은 오롯이 노사 간 문제다. 사진은 한 신용불량자의 월급 통장과 명세서. 하루 12시간 택시를 몰아 번 돈이 78만원 남짓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월 말 발표된 통계청의 ‘2014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임금 근로자 1,873만명의 절반이 2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아 살고 있다. 저임금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대체 누구 탓일까. 과분한 임금을 받는 귀족 노동자들 탓이란 게 일각의 매도다. 과연 그럴까. 독식론은 불순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질투를 부추겨 과도한 착취율을 감추려는 사용자 측 의도가 반영돼서다. 임금은 오롯이 노사 간 문제다. 사진은 한 신용불량자의 월급 통장과 명세서. 하루 12시간 택시를 몰아 번 돈이 78만원 남짓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한 만큼 못 버는 자본주의 사회다. 사용자는 잉여노동 덕에 먹고 산다. 착취를 통해서다. 우리 저임은 저곳 고임 탓이 아니다. 외려 협상 지렛대다. 독식론은 노노 갈등 조장용이다.

“대형마트 10년차 비정규직 월급이 온갖 수당을 포함하고도 110만원이 안 된다는 데 분개하고,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 아파트 경비원이 월 100만원도 못 번다는 사실에 흥분했지만, 내 사고의 지형 속에서 그들은 대체로 소수적 예외로 주변화되곤 했다. ‘저임금’, ‘저소득’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일부’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명사였고, 양극화니 어쩌니 해도, 나는 여전히 중산층이 다소나마 불룩한 다이아몬드형 다이어그램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틀렸다. 월 급여 200만원 미만은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 (…) 무려 37.3%, 그러니까 매일 아침 출근해 늦은 저녁 퇴근하는 직장인 10명 중 4명이 100만원대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 100만원 미만의 임금근로자 12.4%를 더하면 월급쟁이 절반이 한 달에 200만원을 못 벌고 있는 셈이다. (…) 나는 그동안 이 ‘고임금 근로자’들을 평균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 임금근로자 절반이 받는 급여를 어떻게 저임금으로 부를 수 있는가. (…) 120만원 안팎의 월급이 도처에 매복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올해 최저임금 5,210원에서 달랑 몇 백원을 더 얹은, 이 인간존엄을 말살하는 노동가치의 환산액이 노동시장에는 이미 바이러스처럼 창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값이 도대체가 사람값이 아니라는 것. 세계의 모든 비참은 여기서 비롯됐다.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니, 결혼 출산 육아 교육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도 네 능력이 그것뿐인 걸 어떡하냐고, 억울하면 공부 잘해서 출세하지 그랬냐고 도처에서 막말이다. (…) 세상의 어떤 하잘것없는 능력도 한 시간 투여한 결과가 5,210원일 수는 없는데, 놀랍고도 슬프게도 모두가 능력주의를 수긍한다. 기업 사내보유금이 500조가 넘고, 실질임금 증가율은 0%대에 들어섰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은 아직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기사가 쏟아진다. 그 대책 없이 쌓인 돈, 임금으로 풀어주시면 좋으련만, 자영업자부터 대기업 CEO까지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월급 올려주세요”니 난망이다. 이럴 때 쓰라고 정부가 있는 것인데, 대책이라고 나온 게 ‘정규직 과보호 완화’란다. 우리가 잘못했다. 애를 너무 많이 낳았다.”

-월급 120만원과 세계의 비참(한국일보 ‘36.5°’ㆍ박선영 문화부 기자) ☞ 전문 보기

“직무별 임금 및 근로조건의 표준이 없는 것은 한국 특유의 부조리 중 하나다. 같은 완성차 조립 일을 하는 정규직이라도 현대차와 사내하청, 쌍용차, 동희오토(완성차 조립 외주업체) 간의 근로조건 격차는 경비만큼 크다. 사내하청 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나쁘다 하나 이 역시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차별 철폐=원청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투쟁은 격렬하다. 인간은 빈곤보다 불공평에 더 분노하는 법이니까! 하는 일은 같은데 소속(자리)에 따라 처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면, 사람은 노동의 질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좋은 데 들어가려고 목숨을 건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시험 경쟁의 본질이자 고시·공시 열풍의 뿌리다. 좋은 데 들어간 사람, 즉 노동의 시장 가격보다 훨씬 더 받는 사람은 그 자리를 결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바로 여기서는 ‘해고는 살인’이 되고, 유사시 구조조정은 너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생존전략 차원에서라도 외주 하청화와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괜찮은 일자리 기근과 비정규직 투쟁의 뿌리다. 동시에 일한 만큼도 못 받는 중소기업 구인난의 뿌리다. 직무에 대한 근로조건의 사회적, 산업적 표준이 없으면 사람은 ‘하늘’을 표준으로 삼아 쟁취=약탈에 나선다. 힘센 놈, 즉 현 세대, 공공부문, 대기업(갑), 독과점기업 종사자는 쟁취에 성공하고, 힘 약한 놈은 그 반대가 된다. 노동시장에 늦게 진입하는 청년·미래세대 대부분은 패배자(loser)가 된다. 이것이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대와 최악의 저출산의 뿌리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부조리가 많지만 이만큼 심각하고 망국적인 부조리는 별로 없다. 산업ㆍ부문 간 생산성(지불능력) 격차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하는 일과 누리는 처우의 균형, 즉 공평 개념 없이 자본과 권력의 착취와 억압에 대항하여 권리 쟁취 투쟁으로 일관한 한국의 기형적 노조 운동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노동의 최상층(300만 명)이자 세계적 고임금 집단인 ‘100인 이상 민간기업 사무관리직 보수’를 기준으로 삼고, 직무보다 호봉(연수) 중심으로 보수 체계를 만든 공무원들의 책임도 못지않다. (…) 공공부문이 진짜 솔선수범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무원 월급 한 푼도 안 줄이고, 바보라도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시장=소비자 선택에 죽고 사는 민간 수준을 감안하여 직무별 임금 및 근로조건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일이 같으면 월급도 같아야 하지 않을까(12월 4일자 동아일보 ‘동아광장’ㆍ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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