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 중단 위기를 맞았다. 당초 달 주위를 도는 궤도선은 2023년, 달 착륙선은 2025년 발사할 계획이었으나, 공약 이후 각각 2017년, 2020년으로 앞당겨졌다. 검증된 근거 없이 발사일정을 재촉하며 정부는 국민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겼다.
가뜩이나 일정이 촉박한데, 내년 달 탐사 사업예산은 ‘0원’이다. 누가 빨리 달에 착륙하자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스스로 계획을 앞당긴 정부가 정작 공약 실현에 필요한 예산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달 탐사 예산 제로’ 사태는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내년 예산안에 조차 포함되지 않아 벌어진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늦게 나와 달 탐사용 약 410억원을 예산안 원안에 넣지 못하고 국회 상임위 단계에서 추가했지만, 최종 심의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며 행정절차를 탓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최종 보고서 발간 전이라 공식 입장은 밝히기 곤란하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과학계의 실망은 이제 냉소 수준에 도달했다. 달 궤도선 발사는 현재 기술로도 큰 어려움은 없다. 인공위성과 비슷해 쏘아 올리면 된다. 하지만 지구보다 중력이 6분의 1밖에 안 되는 달에 내려앉아야 하는 착륙선은 결코 만만한 기술이 아니다. 게다가 현재 계획대로 갓 만든 한국형발사체에 착륙선을 실어 달에 보내는 건 더욱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한 공학자는 “예산 삭감이 오히려 다행”이라고까지 했다. “우주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토양도 부족한데 달에 태극기를 꽂고 온다 해도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겠냐”고 그는 반문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2016년 예산을 확보하기 전까지 기존 ‘우주핵심기술개발사업’ 예산 중 10억원 안팎을 달 탐사 선행연구용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달 탐사 때문에 다른 우주 분야 신규 연구개발 지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실망하는 건 이미 만성이 됐다고 치자. 하지만 앞당겨진 계획을 달성하느라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해온 현장의 과학자들의 낙담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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