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들어가서 한 건데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자신도 모르게 잘될 때가 있잖아요.”
한 달 후 서른 줄에 접어드는 최석기(한국전력)는 마치 신인 선수처럼 얼떨떨해 했다. 그는 프로 데뷔 이후 한국전력에서만 줄곧 뛴 7년 차 선수다. 웜업존 붙박이 에 머물던 최석기는 3일 OK저축은행과의 홈경기에서 시몬(27ㆍ쿠바)의 고공폭격을 8개나 막아내며 그 동안의 울분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승부처마다 터진 블로킹이었기에 환호성은 더 컸다.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 실에 들어선 최석기는 “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왔다. 데뷔 이후 경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것도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최석기는 2011년 9월 프로배구 코보컵 대회 중 왼쪽 무릎을 다친 후 2013년까지 세 번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는 한동안 코트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최석기는 “무릎 수술하고 1년 반을 아예 걷지도 못했다. 지난해 재수술하면서 배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감독과 구단의 설득으로 올 시즌까지 힘겹게 버텨왔지만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최석기는 “일부에선 아직까지도 제가 팀에 없는 줄 안다”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최석기야말로 팀의 굴곡을 모두 겪은 원년멤버다. 최석기는 “창단 멤버는 나밖에 안 남았다. 25연패도 두 번 해봤다. 합치면 50연패”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어 “승부조작, 용병ㆍ감독 교체 등등 7년 동안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긴 세월 음지를 지키다가 OK저축은행 전에서 ‘대박’이 터졌지만 의외로 최석기의 꿈은 소박했다. 그는 “부상당한 몸으로 코트에 적응 중이다. 오늘 잘된 것도 ‘너무’ 잘돼버렸다”며 “다음에 또 이렇게 잘하리란 법은 없다. 그냥 꾸준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출전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프로 7년차, 그의 바람이었다.
신영철(50) 한국전력 감독 역시 최석기의 부활을 기뻐했다. 신 감독은 “오늘 경기의 기폭제가 된 것은 센터 블로킹에 들어간 최석기”라며 칭찬했다. 이어 신 감독은 “최석기가 그동안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우리 팀 센터 중에 (블로킹) 손 모양이 제일 낫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에는 최석기 외에 후인정(40), 방신봉(39), 하경민(32) 베테랑 센터 3명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최석기도 이 3명을 제외하고는 팀의 최고참이다.
그간의 고생담을 한참 털어놓은 최석기는 “스물셋에 입단했는데 이제 한달 지나면 서른이네요”라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를 끝낸 그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