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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절반 월세로" "아이 학원 끊었죠" 서민들 커지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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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절반 월세로" "아이 학원 끊었죠" 서민들 커지는 비명

입력
2014.12.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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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전세금에 물량마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떠밀려

주거비 外 소득 최저생계비 미달, 서울에 주거빈곤층 26만 가구

서울 동작구의 다가구 주택촌. 다가구주택의 경우 전세에서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한층 키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동작구의 다가구 주택촌. 다가구주택의 경우 전세에서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한층 키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푸르지오아파트(105㎡)에서 3억5,000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던 회사원 K(36)씨는 얼마 전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을 내는 보증부 월세로 바꿔서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월세 전환율이 4.8%에 불과하다며 굉장한 선심을 쓴다는 투였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타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K씨가 부담했던 주거비는 연 이자 3.5%로 받은 전세자금대출 1억원의 이자가 전부. 월 30만원에 못 미쳤다. 하지만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면서 보증금 3억원을 돌려 받아 대출금 1억원을 갚고 손에 쥔 돈은 2억원에 불과했다. 이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둬 봐야 세금 떼고 받을 수 있는 이자는 2%가 채 안 된다. 매달 120만원의 월세를 부담하는 반면 이자 소득은 3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면서 주거비 부담이 30만원에서 90만원 가량으로 3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K씨는 “다른 전세를 물색해 봤지만 전세금이 껑충 뛴 데다 물량마저 거의 없어 포기했다”며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서 두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 삼성동 인근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L(29)씨. 인근 오피스텔에 저렴한 전세를 구해볼까 발품을 팔았지만 터무니 없이 높은 보증금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보증금 1,000만원에 월 85만원에 인근 I오피스텔에 입주했다. 관리비를 포함하면 그가 한 달에 주거비로 지출하는 금액만 100만원 내외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고스란히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는 현실에서 저축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죽어라 일해서 번 돈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기분”이라며 “돈을 모을 수 없으니 내 집 마련은커녕 언제 전세로 갈아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월세 시대. 하지만 여기에 세입자들의 선택은 사실상 배제돼 있다. 자발적으로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세입자들은 임대시장 환경 변화, 그리고 집주인들의 요구에 월세로 떠밀리는 것이 현실인 탓이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대다수 전세의 월세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월세 시대의 그늘이다.

지난 2월 비극적으로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는 생전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내고 살았다. 난방비를 포함한 관리비가 월 20만원 가량이었으니 매달 주거를 유지하는 데에만 70만원 정도가 들었다. 어머니의 월수입은 150만원 정도. 이른바 소득대비 임대료비율(RIR: Rent to Income Ratio)이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33%에 달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RIR이 30%를 넘고 주거비를 제외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거 빈곤 상태로 불린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이 임대료 과부담으로 주거 빈곤에 빠진 가구는 서울 지역의 경우 7.6%에 달하는 26만7,000여 가구로 추정된다. 월세 시대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송파 세 모녀처럼 주거 빈곤으로 내몰리는 사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월세의 고통은 저소득층과 소형주택 임차인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시내 거주 7,500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가장 저소득층인 소득 하위 20% 임차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할 경우 RIR, 즉 주거비 부담은 20.4%에서 33.8%로 급등할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그 동안 전세제도 덕분에 주거비 부담 비중이 20%대에 머무를 수 있었다”며 “월세로 넘어가면 소득 수준에 따라 비율이 30% 후반까지 치솟게 될 것이어서 월세 시대는 저소득층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계의 소비지출 가운데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슈바베 지수(Schwabe Index) 역시 월세 비율이 확대되면서 더 높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9.7%였던 이 지수는 2010년 10.1%, 2013년 10.4%, 그리고 올 3분기 10.8%까지 치솟았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월세물건이 많아져 서울 지역의 경우 요새 월세전환율이 대체로 5% 내외에 머물고 있지만 대출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월세 임차인의 주거부담은 자동적으로 커진다”며 “정서상 월세는 그냥 날리는 돈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저소득층의 소비는 더욱 위축된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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