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실 파견 검·경 교체 인사 때
'정윤회 문건' 담당자 업무 배제시켜
박 경정 "누군가 복사" 주장과 일치
대검, 靑 복귀 검찰 수사관 이미 조사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59)씨의 국정 개입 정황이 담긴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이 아닌 제3자에 의해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정씨는 문건 작성부터 유출까지 “모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검찰 수사를 통해 사태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경찰과 검찰 등에서 파견 나온 행정관들에 대한 교체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들 중 일부에 대해 인사명령이 나기 한 달 전쯤부터 업무배제 조치를 취했다. 업무배제는 주로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위 혐의가 드러날 때 내려지는 것으로, 새로운 행정관들을 뽑을 때까지 아무런 일도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정씨 동향 보고서에 담긴 내용(국정 개입 의혹)을 조사했던 행정관들이 업무배제 대상자였다”며 “이들 가운데 (박 경정 외) 누군가가 정윤회 문건을 갖고 있다가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올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경정급 경찰관은 모두 5명인데,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2월 12일자 파견해제)을 포함해 이들 모두 2월 또는 7월에 경찰로 원대복귀했다. 검찰 수사관 출신 행정관 3명도 비슷한 시기에 파견 해제됐다.
당시 청와대 근무자들 사이에서도 제3자에 의한 문건 유출 가능성은 흘러나오고 있다.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 6월 민정에 올라간 한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유출한)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고 했다. 또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다가 경찰로 복귀한 A 경정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같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라 해도 담당업무가 다르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게 일반적인데, 정윤회 문건의 경우엔 ‘박 경정이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잡음이 생겼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에 대한 소문이 퍼져 박 경정과 통화했을 때에도 굉장히 말을 아꼈던 것을 보면, 박 경정이 아니라 청와대 내의 다른 인사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복귀하기 얼마 전 책상 서랍에 있던 서류를 누군가가 복사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한 박 경정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문건 유출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의도로 이뤄졌느냐다. 이에 대해 정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박지만 EG 회장 미행 의혹이나 국정 개입 의혹 등은 모두 민정수석실에서 나를 음해하려고 조작한 것”이라며 “민정이 첩보 수준을 조작해 정보를 만들고 그걸 공식 문서화해 보고했다”고 말했다. 문건 작성부터 보고, 유출에 관여한 ‘윗선’이 있고, 청와대 내 특정 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벌어진 사건이라는 말이다. 민정수석실에 파견됐다 경찰로 복귀한 B 경정도 “민정수석실 산하의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감찰 범주로 묶여 있긴 하지만, 정보공유 자체가 단절돼 있어 행정관급 경찰관이 다른 사무실에 몰래 들락거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문건 유출에) 반드시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은 조 전 비서관이 언급한 ‘5~6월 문건’과 관련해 올해 청와대에서 복귀한 검찰 수사관들을 상대로 문건 유출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를 이미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수사관들은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조만간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한 뒤 본격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정윤회 문건 보도에 따른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세계일보를 고소한 청와대 측 대리인인 손교명 변호사를 전날 불러 조사했다. 손 변호사는 “검찰에서 문건 내용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필요에 따라 고소인을 직접 소환할 수도 있다”고 밝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이 검찰에 출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는 “검찰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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