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가 부당해고 인정했지만
중앙회는 법원 판결 보자며
유족이 더 지치길 기다려
누구보다 삶에 애착 많았던 아이
지옥 같은 노동시장에서 희생"
“정규직 전환 약속만 믿고 괴물 같은 조직에서 2년 동안 정신적 농락을 당하면서도 참았는데… 결국 애를 두 번 죽인 거다.”
중소기업중앙회 비정규직 여직원 권모(25)씨의 외삼촌 김모씨는 조카의 죽음과 중앙회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떠올리자 울분을 터뜨렸다. 권씨는 성희롱 등의 수모를 참고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부당해고를 당하자(본보 12월1일자 1면▶ 기사보기) 지난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홀로 남겨진 권씨의 어머니를 대신해 두 달 동안 중앙회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과 중앙회 간부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을 대하는 비인간적인 행태와 부당해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절망감을 느꼈다”며 중앙회를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소모품처럼 버려져 결국은 생을 마감하는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_권씨 어머니(김씨의 누나)가 매우 힘들어하지 않나.
“누나는 조카가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부양하며 친구처럼 의지하면서 살았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조카는 굉장히 명석했고 대학원까지 가서 용돈 벌면서 홀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 생각만 했다. 누나도 그 희망으로 지금까지 헌신하며 버텼다. 그런데 딸이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저런 식으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고통이 컸겠나.”
_고인이 사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날 것 같다.
“두 달이 2년 같았다. 옆에서 누나를 지켜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다. 아직도 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해 텅 빈 딸 방을 지금도 매일 같이 들어간다. 잠자리 들 때 제일 힘들다고 한다. 꿈에서 딸을 매일 보니까. 현실과 꿈 사이에서 괴리가 너무 크다.”
_법원 판례도 있고 고용노동부 의견도 있는데, 중앙회는 왜 권씨가 부당해고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가.
“그러게 말이다. 중앙회만 왜 아니라고 하는지 정말 답답하다.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부당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생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해서라도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도무지 입장변화가 없다.”
_왜 인정을 안 하는 것 같나.
“법원 판단이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 않나. 시간을 끌어서 유족을 지치게 하려는 것 같다. 인정했을 경우 뒤따를 책임문제도 걱정하는 것 같고.”
_가장 분노를 느낀 적은 언제인가.
“고인이 사망한 후 처음 만날 때부터 중앙회는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누구 하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진실규명과 가해자 징계가 우선인데도 보상 이야기부터 꺼냈다. 국정감사를 거치며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지 않았으면 굉장히 힘든 싸움을 했을 것 같다. (흥분하며) 그런데 정규직을 써야 할 자리에 계약직을 쓰고, 잔인하게 직원들을 대우하고, 악독한 행위들을 한 것 아닌가. 그게 괘씸하고 참을 수가 없는 거다.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 이를 미끼로 기만하고 농락한 거다.”
_중앙회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어떡할 건가.
“중앙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_권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사회적 타살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누구보다 삶에 애착이 많은 아이였는데 오죽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나. 그런 괴물 같은 조직에서 정신적으로 농락을 당하다 보니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거다. 정규직 전환 약속, 그거 하나 믿고 버틴 거다. 사실상 애를 두 번 죽인 거 아닌가 싶다.”
_권씨가 해고당한 후 한 달 만에 자살했다. 그 사이 무엇을 했나.
“해고 당하고 성추행 당한 것이 너무 억울해서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노무사 공부도 하고 혼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중앙회는 움직이지 않는 공룡 같은 조직이었다. 잊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악몽 같은 과거가 떠오르니까 용서가 안 되는 것 같았다.”.
_유족으로서 권씨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사회가 우리 조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 같다. 안정된 직장으로 이직하려는 애를 거짓말로 꼬셔서 못 가게 하고 못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팽개친 것 아닌가. 조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이냐.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지옥 같은 노동시장에서 희생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조카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