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야간시위 금지 한정 위헌
밤 12시 이후는 판단 유보하자
법원, 기계적 실형 벌금 잇단 선고
2008년 6월 ‘광우병 위험 미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 국민대책회의’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30대 초반 정모씨는 같은 해 야간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이후 정씨에게 적용되었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의 ‘야간 시위 금지’ 조항(제10조)은 이듬해 집회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됐다.
올해 3월 헌재가 마침내 해당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자 정씨는 당연히 검찰의 공소취하를 예상했다. 하지만 정씨의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헌재 결정 이후 6년 만에 재판이 재개됐지만 올해 9월 선고 공판에서 벌금 100만원 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당시 헌재는 해가 진 후부터 자정까지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으나, 자정 이후에도 시위를 금지할 것인지는 국민 법감정과 국내 실정에 따라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결론 내렸다. 문제는 이처럼 자정 전후로 위헌 여부를 달리 판단한 헌재의 어정쩡한 결론에서 비롯됐다. 법원이 헌재 결정에 따라 정씨가 야간 집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으나, 자정 이후 현장에 남아 시위를 벌인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본 것이다.
당시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정 이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 무렵 대부분의 촛불집회 상황이 비슷했다. 정씨는 시위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이 억울했지만 서울시 소재 준공공기관에 재직하고 있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정씨 사례처럼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이후 6년 만에 재개된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서 자정 이후까지 자리를 지켰던 시위 참가자들에게 최근 기계적인 기소와 유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헌재가 자정 이후 시위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도 아닌데 검찰과 법원은 자정 이후 시위에 참가한 집행부나 일반 시민 참가자에게 실형을 내리거나 벌금형을 내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자정 이후 시위에 참가한 집행부에게는 실형과 집행유예, 일반 시민에게는 100만∼200만원 벌금이 선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변 추산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사람 가운데 950여명 가량이 집시법 위반 또는 일반교통방해죄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 중 860여명이 약식 기소되었고 83명은 정식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민변 관계자는 “정확히 집계할 수 없지만 이중 상당수가 야간 시위 금지 조항으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밤 11시 59분까지 열리는 집회와 새벽 0시 1분에 열리는 집회가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특정시간대를 기준으로 집회의 위헌여부를 판단한 것은 타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기습적인 도로점거가 아닌 평화적인 집회ㆍ시위는 그 권리를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랑희 활동가는 “당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나 불합리한 정부 정책과 같은 배경이 판결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사람들의 행동 특성, 상황적 배경 등이 고려되지 않은 ‘묻지마 유죄 선고’”라고 비판했다.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유죄 판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날부터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 검찰과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법원 판결을 분석ㆍ비평하는 토론회를 열고 촛불시민들과 함께하는 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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