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여유… 퇴선명령 제때 안 해" 강풍·파도 탓 실종자 수색 어려워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사조산업의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가 침몰한 데에 대해 늘어난 쿼터량을 채우기 위해 악천후임에도 무리하게 추가 조업을 나갔다가 일어난 사고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2일 오후 부산 서구 남부민동 사조산업 부산지사의 사고대책본부에서 열린 수색ㆍ구조작업 상황 브리핑에서 “36년 된 노후 선박으로 기상이 좋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조업을 하다 이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한 실종 선원 가족은 “사고 전 통화에서 할당 받은 어획량을 다 잡았는데 선사 측에서 추가 조업지시를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고, 다른 가족도 “최근 명태 값이 오르고 있어 러시아로부터 추가로 받은 쿼터량을 채우려고 무리하게 조업을 시킨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 사조산업 측은 “한국과 러시아 정부 간 협상으로 애초 3만톤을 할당 받았는데 조업이 부진해 이 할당량도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러시아에서 1만톤의 쿼터를 더 줬고, 올해 배당된 쿼터량을 처리해야 내년에도 같은 양의 조업 계약을 할 수 있어 최대한의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게 선사 측 설명이다.
선사 측은 “늘어난 쿼터를 채우려고 국내 5개 선사 소속 트롤어선 5척이 모두 조업을 연장한 것이지 오룡호에만 추가 조업을 지시한 게 아니다”며 쿼터 추가 할당이 사고의 빌미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배가 기울기 시작해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4시간 이상 여유가 있었는데 선사가 퇴선 명령을 제 때 하지 않고 선원구조 준비도 제대로 못해 참변이 발생했다”며 분노했다. 이 자리에선 “만든 지 40년 가까이 돼 써선 안 되는 배를 외국에서 사와 수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조업시킨 게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선사 측은 “기상이 얼마나 안 좋은지 여기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선장들이 해역에서 판단한다”면서 “사고 선박은 올해 2월 대대적인 점검을 완료했고, 7월 출항 전에도 수리를 했다”고 말했다.
사고 해역에서는 이날 오전 4척의 선박과 함께 미국 해양경비대 소속 비행기가 동원돼 수색이 재개됐지만 오후 들어 초속 25m의 강풍과 6~7m의 파도가 몰려와 수색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수색이 장기화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고 인근 해역에서 이날 오룡호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명뗏목 1대를 건져 올렸으나 실종 선원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해역은 수온이 0도 안팎이고 실종 선원 52명 가운데 대부분이 구명뗏목에 타지 못한 채 구명동의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구조 가능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영상 국무회의에서 “인근 국가 등의 협조를 구해 선원 구조와 수색작업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외교부는 미국, 러시아 등과 긴밀한 수색공조 등을 위해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직원 2명을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추코트카 항구로 파견한 데 이어 조만간 신속대응팀 2명을 추코트카 항구나 캄차스키 항구로 보낼 예정이다.
1일 오후 조업도중 침몰한 오룡호에는 한국인 선원 11명을 비롯해 60명이 타고 있었고, 이중 러시아인 1명, 필리핀인 3명, 인도네시아인 3명만 구조됐다. 선사 측은 구조된 뒤 숨진 한국 선원의 신원이 확인됐지만 유가족의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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