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있어도 있다 하겠나. 대통령이 비선 같은 거 없다는데. 어용 칼잡이가 무슨 배짱으로. 하명 수사는 뻔하다. 이미 알고 하는 주문이다. 바라는 바가 규명이 아니라 은폐란 얘기다.
“‘정윤회 문건’ 사건과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머리 안에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청와대는 문건이 불거지자마자,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를 고소하는 형식을 빌려 검찰에 넘겼다. 문건 내용이나 작성 경위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그렇게 덥석 검찰에 넘길 사안인가? 왜 청와대는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고, 자체 감찰도 하지 않는 거지? 해봤자 국민이 안 믿을 것 같아서? 그러니 일찌감치 검찰에 맡기자? 그런데 문건 내용대로 정윤회씨가 청와대 ‘3인방’을 만났다면 그게 정치윤리상 비난받을 행위는 될지언정 그 자체로 범죄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범죄행위가 아닌 걸 검찰이 수사한다? (…) 적극적으로 혐의를 찾기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기 쉽다. (…) 관련자 대다수가 청와대 관계자이고,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청와대의 이렇다 할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바로 검찰로 넘어가도 되는 건가. 문건이 유출되기까지엔 불법행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의혹의 핵심이 되고 있는 정씨의 국정 개입 여부는 당장 불법행위로 보기도 힘든데 말이다. 검찰이 청와대의 감찰실은 아니지 않은가.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을 보니 불안함이 더 커진다. 박 대통령은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점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하면서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지만, 최근 여러 사안에서 검찰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해 신뢰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 문건을 보도한 신문사가 명예훼손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근거도 희박하다. 청와대 직원이 작성했고,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된 문건을 보도한 행위가 명예훼손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보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라는 대통령의 말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
-청와대의 감찰과 검찰(한겨레 ‘야! 한국사회’ㆍ임범 대중문화평론가) ☞ 전문 보기
“국가는 진실을 밝히는 데 대체로 소질이 없다. (…) 무엇보다 국가는 생물체처럼 제 몸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강하다. 국가는 체제 존속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진실을 덮기도 한다. (…) 어떤 일이 터졌을 때 국가를 상징하는 최고 통치자가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검찰에 주문하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권력의 꼭짓점이 아무리 노력해도 국가라는 몸통이 갖는 속성을 완벽하게 거스르진 못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특정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권력자는 대통령이다. (…) 검찰은 국정원이나 세무서도 파헤치고, 국회의원도 잡아가고, 법관에게 죄를 추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자기 인사권을 쥔 청와대를 들여다볼 때도 동일한 권능과 원칙이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 그런 용기와 의지도 인사권 앞에서 힘이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VIP 측근 동향’ 보고서 파문의 핵심 인물인 정윤회씨가 어제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 정씨는 “(언론이) 헛소문에 맞춰 광대의 춤을 춘다”고도 했다. 대통령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보도했다”고 책망했다. (…) 현장 기자들은 팩트 한 조각을 건져내려고 불구덩이에도 뛰어든다. 국가가 감추려는 흐릿한 진실의 실루엣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그릴 수만 있다면 그까짓 광대춤인들 못 추겠는가. (…) 국가가 진실을 파헤칠 때보다 오히려 국가가 진실을 덮을 때 나는 국가를 느낀다. 역설적으로 그게 국가답다. (…) 그러나 다행이다. 국가는 진실을 마냥 덮기만 하다가는 체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우리가 국가를 느끼고, 국가 스스로 국가임을 깨닫게 해야 할 때 광대춤을 추는 언론이 곁에 있다.”
-言論 역할 이해 못하는 정윤회씨(조선일보 ‘김광일의 태평로’ㆍ논설위원) ☞ 전문 보기
벌이 무용할 때가 있다. 더 나빠지게 할 도리가 없는 경우다. 북한이 그렇다. 외톨이를 고립시킬 순 없다. 일단 안아줘야 한다. 없으면 아쉬울 선물을 받은 뒤에야 박탈감도 생긴다.
“반 세기 넘게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가 쿠바의 정치제도와 주민 인권상황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제재의 고통은 애꿎은 일반주민들의 몫이었고, 굶주림 등 열악한 생존조건을 피해 미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으로서는 사회주의혁명 이후의 쿠바 상황에 대해 방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과감히 제재를 풀고 인적 왕래와 무역 등을 자유롭게 했다면 과연 쿠바의 사회주의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을까. 쿠바의 체제 유지의 1등 공신은 결국 미국 정부인 셈이다. 명분에 입각한 제재조치가 제재 대상국의 변화를 가로 막는 것은 기막힌 제재의 역설이다. 미국의 쿠바 제재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의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도 명분이야 그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이 이를 계기로 외부로 향한 문을 한층 닫아 건다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더욱 열악해질 게 뻔하다. 북한의 근본적 인권문제는 집단주의와 수령1인 지배라는 체제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경우 바로 그 체제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 이런 상황에서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협상이 성립하기 어렵다. (…) 명분과 선결조건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일이 안 된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발목을 묶는 족쇄가 될 뿐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중요한 명분이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체제의 속성에서 비롯된 인권문제는 풀지 못한다. 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 역시 대화를 통한 교류협력과 공존의 틀 속에서 풀어갈 때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남북관계를 변화시킬 의지가 있다면 김정은 체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통일준비위원회가 마련 중인 통일헌장에도 상대를 인정하는 공존의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쿠바와 북한, 제재의 역설(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이계성 수석논설위원) ☞ 전문 보기
“문명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인간으로서 자연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인류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 문제를 국가주권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 이 같은 북한의 인식이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유신체제의 한국은 국가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나라였다. (…)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가동원형 산업화를 추진하는 병영식 개발독재 체제에 대해 국제적 비난이 일었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당시 정부의 궤변은 인권문제가 인류보편적 가치가 아닌 주권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과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처럼 박약한 인권 의식을 갖고 있던 한국이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 다른 독재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인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개선 조치를 취하는 나라는 없다. 국제사회에 깊숙이 편입되고 국제규범을 무시하기엔 잃을 것이 너무 많아진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인권개선에 나선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지난달 18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기소 가능성을 열어놓은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개입해 행동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인권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은 없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돼 있는 나라다. 국제 관계에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크지 않고 외부세계와 쌓은 외교적·정치적 자산도 없는 북한에 국제질서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인권 개선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고 개선을 원한다면, 압박과 비난에 그쳐서는 안된다.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킨 뒤 그에 합당한 규범을 적용해 얽어매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북한의 인권 개선을 원한다면(경향신문 ‘유신모의 외교포커스’ㆍ정치부 차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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