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 및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해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공직기강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이런 근거없는 일로 나라를 흔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공직기강 해이에서 온 내부 문건의 불법 유출이며 야당이 말하는 ‘정윤회 게이트’는 국정흔들기라는 인식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비선실세’로 알려져 있는 정윤회씨에 대한 청와대 문건은 그 동안 의혹으로 언론과 인구에 회자됐던 인사에 대한 동향을 담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문건의 내용의 사실 여부가 밝혀져야 하겠지만 사안의 성격상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문건작성 과정과 유출을 정윤회씨와 박지만 EG그룹 회장간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우선 문건 유출의 경위를 밝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혔듯 “기초적인 사실확인 조차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그대로 외부로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을 보는 관점의 문제다. 이 사태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향후 정권의 권력 운용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 ‘비선실세’가 청와대 인사와 국정에 개입하려 했느냐의 문제와 최고권력을 둘러 싼 측근 그룹간의 파워게임으로 인한 국기문란은 박 대통령이 언급한 “문건 유출로 인한 국기문란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건의 작성자로 알려진 박 경정이 청와대 해명처럼 문건 작성시 별도의 확인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문건 유출과 명예훼손으로 귀결되면서 공직기강 확립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감찰 수사의 전문가인 박 경정이 사실 확인 없이 최고권력을 둘러 싼 민감한 권력갈등을 단순히 풍문을 모아 정리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진다. 청와대 주장과 달리 문건작성 근거와 자료가 존재하고 문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번 사안의 본질은 최측근의 권력의 사유화를 통한 국정 농단에 다름 아니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측근 그룹의 일탈행위의 구조화는 최고권력의 우산을 배경으로 정치경제적 과실을 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권위주의의 유산인 충성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왕조시대의 저급한 주종관계로 전락하기도 한다. 정치권력의 향유와 함께 경제적 비리사슬의 포식자로 군림하다 종국에는 몰락하는 병리적 현상은 한국정치의 공식이 됐다. 개인의 추락은 자신뿐 아니라 권력의 퇴행과 정치사회의 후퇴를 동반한다. 측근 그룹의 권력투쟁은 대통령 임기 말의 경제적 과실에 집착하는 먹이 사슬보다 폐부가 깊은 법이다. 지난 정권 때의 권력 핵심의 왜곡된 권력 암투와 악취가 진동하는 비리의 결과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식라인이 아닌 비선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현상이다. 따라서 정치에서 권력이란 요인을 빼면 정치현상을 논할 수 없다. 타인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권력에 대한 고전적 정의에서 보듯 권력은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권력은 정당한 수단을 통한 획득이 아니면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의 파멸은 물론 사회의 퇴행을 가져온다.
민주화 이후 선출된 대통령들이 임기 말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 농단과 비리로 인해 지지율의 급전직하는 물론 지지율 20%대의 식물 대통령의 신세로 전락하고, 급기야 집권당을 탈당하는 현상은 한국 대통령제에서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권력행사의 일탈에서 오는 필연적 귀결이다. 최고권력에 기생해 호가호위하려는 한 줌도 안 되는 이너서클의 존재는 그래서 항상 경계의 대상이며 이를 여하히 관리하느냐가 정권의 승패 여부를 내재적으로 결정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