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돼야 소문은 정보화한다. 우연을 바라는 게 찌라시다. 맞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다. 생산도 의존도 당국 할 짓이 아니다. 명예훼손은 자업자득이다. 음습지에서 곰팡이는 핀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듣게 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찌라시’였다. (…) 훨씬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단어로 ‘삐라’도 있다. (…) 하나같이 하잘것없는 느낌인 이 찌라시와 삐라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힘이 세다. 21세기 하고도 두 번째 10년의 한복판에 한국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로 떠올랐다.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돼 있는 문서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림없이 그대로 다 까발려져도 그 연원은 찌라시다.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의 행정관이 작성한 문서도 역시 찌라시를 짜깁기한 느낌일 뿐이다. (…) 도대체 찌라시가 뭐 어쨌단 것인가. 앞의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찌라시는 100% 맞기도 하고 한편으론 완전 엉터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니 어떤 단일한 이미지를 그릴 수 없다. 맞아도 찌라시, 틀려도 찌라시라니…. (…) 찌라시는 곧 ‘밑도 끝도 없고 틀려도 그만이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풍문을 말할 터이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검찰에서 찌라시의 내용을 최초로 발설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증권맨들이 국어 순화에 나서서 찌라시를 ‘전단’이라고 고쳐 부른다고 상상해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찌라시를 줄곧 찌라시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이 일본말 자체에 어떤 경멸적이며 자조적인 뉘앙스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찌라시를 정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온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설할 때, 권부(權府)와 국민 모두가 한꺼번에 지질한 존재로 곤두박질치듯 아찔한 현기증이 들지 않는가. 다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한껏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에 일본말에서 온 그다지 품격 있어 보이지 않는 어감의 단어를 집권당의 책임 있는 인물과 청와대 대변인이 다투듯 사용하는 모습은 안쓰럽고 무안하다. (…) 국가기관의 명예가 훼손된다 하여 크게 문제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 명예들은 누가 훼손하기보다는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찌라시’ 공화국(중앙일보 ‘서소문 포럼’ㆍ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 전문 보기
“패관문학(稗官文學)에서 ‘패관’은 옛날 중국에서 황제나 제후가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고자 거리의 소문을 모아 기록시키던 벼슬의 이름이었다. (…) 패관들은 수집한 진위가 불분명한 소문들을 기반으로 창의성과 윤색이라는 피와 살을 붙여 패관문학·패관소설을 발전시켰다. (…) 현대 한국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시중의 소문들을 모아 적어 놓은 증권가의 정보지를 ‘찌라시’라고 부른다. (…) 1980년대 중반 증권시장 상승기에 시작됐다는 증권가 정보지는 기업정보뿐 아니라 청와대 수석회의나 국무회의 등에서 나온 대통령·장관·청와대 수석의 날 선 발언이나 실세들의 권력투쟁, 특정 정책의 도입 배경, 정경유착, 연예계 험담 등을 그럴듯하게 제공했다. 정보원은 누구인지 모른다. (…) 증권가 정보지는 한때 자취를 감추는 듯했지만 늘 그렇듯이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끈질기게 부활하고 공유됐다. 올 2월에 개봉한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처럼 말이다. 찌라시는 면죄부의 근거로도 제시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본문을 고스란히 인용한 대중 연설을 해 유출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내용을 증권가 찌라시에서 봤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그의 해명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문제의 찌라시는 훌륭한 정보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민간인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의 비선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문서가 논란이다. 정식 명칭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건의 실체를 인정했지만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대표에게 무혐의를 허락한 특급 찌라시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을 망각한 모양이다.”
-찌라시(서울신문 ‘씨줄날줄’ㆍ문소영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예고된 식언이었을 터. 불신 위에 탕평이 서진 못한다. 집권으로 사심을 채운 그에게 통치는 성가신 일이었을지 모른다. 삐걱대도 심복이면 족했을 거다. 하지만 섭정까지 원했을까.
“장관도 못한다는 대통령 얼굴 보기를 매일 하는 사람들이 ‘문고리권력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이다. 이들을 포함해 ‘십상시’라는 청와대 안팎 10명을 정윤회가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VIP(대통령)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이라고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엔 쓰여 있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한 일이라면 대통령은 놀랄 것도 없다. (…) 그러나 대통령이 전혀 모르게 해온 일이라면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 청와대는 근거 없는 내용이어서 김기춘 비서실장 선까지만 보고됐다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문건 자체는 알았어야 한다. (…) 지금까지 청와대가 밝힌 것만 보면 대통령은 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 참모진은 세월호 침몰 당일 틀린 보고에 이어 진도체육관 방문도 “경호에 문제가 있다”고 막아서더니, 대통령과 관련된 보고서마저 선별적으로 올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 이쯤 되면 3인방은 문고리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권력이다. (…) 물론 문건에 ‘그만두게 할 예정’으로 언급된 김 실장이 건재한 걸 보면 정윤회가 실세 맞나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3인방이 정윤회를 만나고 다녔다면 그들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 아닌 다른 사람에게 충성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선출되지 않은 정윤회라는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휘둘렀다는 게 말이 되는가. (…) 이 문제를 조기 종식하는 한 방법은,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들이는 거다. (…) 아니면 3인방을 내치는 수밖에 없다. 수족 같은 심복이 사라지면 대통령은 불편하겠지만 그냥 두면 국민이 불편하다. (…) 문건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구설수에 오른 것만으로도 책임질 필요가 있다. (…) 가족과 측근을 우대하는 건 인간 본성이지만 족벌주의 연고주의를 국정에 앞세운 나라는 망한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일갈한 바 있다. 비서실 몇 사람 자리 보존보다 대통령이, 나라가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정윤회를 들이든가, ‘문고리권력’ 내치든가(동아일보 기명 칼럼ㆍ김순덕 논설실장) ☞ 전문 보기
“권력의 크기는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좌우된다. 대통령 방의 문고리를 누가 쥐고 있느냐가 절대적이다.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제1ㆍ2 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을 만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 지금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 입성한 후 15년 동안 보좌관으로 일해온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포진해있다. 가족과 같은 이들에게 쏟는 박 대통령의 믿음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정윤회씨도 자주 구설에 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던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라는 인연으로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뒤 비서실장 역할을 해왔다. (…) “이재만 비서관이 퇴근 때 인사서류를 보자기에 싸서 청와대 밖으로 나간 것이 목격됐는데 정씨에게 낙점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야권의 폭로가 있었고, 정씨 측이 박지만씨를 장기간 미행하다 들켜 암투가 벌어졌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문고리 권력과 비선 라인의 인사 전횡에 대해 청와대는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한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에 의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 대통령의 비선 권력 문제는 대개 정권의 힘이 빠지는 집권 후반기에 불거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막후 권력간의 알력과 균열이 훨씬 일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공조직이 무력화되고 국정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다는 징표다. (…) 박 대통령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비선 라인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인연에 얽매여 망설일수록 대통령의 레임덕은 빨라지기 마련이다. 문고리 3인방이 중국 후한 말에 권력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명의 환관 ‘십상시(十常侍)’에 비견되고 있음을 모르는가.”
-‘문고리 권력’ 놔둘 건가(10월 14일자 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이충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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