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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아베노믹스…성공인가 실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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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아베노믹스…성공인가 실패인가

입력
2014.12.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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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물가 오르고 실질소득은 줄어, 소비 하락 악순환 우려감 확대

아베노믹스 핵심 성장 전략, 규제 개선 통한 민간 투자 활성화도

“환율은 경제와 금융의 ‘펀더멘털’을 반영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가 지난달 25일 엔화 약세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를 담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아베노믹스’를 지원하기 위해 물갈이 돼 일본 중앙은행을 책임지고 있는 구로다 총재는 취임 후 일본 경제에 도움된다며 엔저를 허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비쳐왔다.

구로다 총재의 태도 변화는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자’며 밀어부친 아베노믹스가 지금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소비세 인상이라는 악재가 있었던 2분기의 마이너스 1.8%는 그렇다 쳐도 정부와 시장이 0.5% 상승을 예상한 3분기 마이너스 0.4%라는 성적표는 충격이었다.

아베노믹스 ‘3개의 화살’은 실패?

출범 2년을 맞은 아베 일본 정권은 20년 디플레이션 탈출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세 개의 화살’로 대변되는 아베노믹스를 가동시켜 왔다.

첫 번째 화살은 과감한 금융완화였다. 일본은행은 2%의 물가상승 목표를 세우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무제한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다음 화살은 탄력적 재정정책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역대 두 번째인 13조엔 규모의 추경 예산을 편성하고 지속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확대를 늘려나가고 있다. 재정 확대를 통해 단기 수요를 늘리고, 이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투자 활성화다. 실질적인 경제 성장 전략이자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전략을 통해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하며,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취업 환경을 조성해 중장기적인 경제성장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연 2.2% 성장했다. 아베 내각 출범 후 첫 3개월은 성장률이 6.7%까지 치솟았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연 평균 0.8% 성장한 데 비하면 엄청나게 개선된 수치다. 아베 정권은 향후 10년 간 연평균 성장 목표 실질 2%, 명목 3%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닛케이 평균 주가도 아베노믹스 실시 후 1년 반 만에 70% 이상 올랐다.

그러나 엔저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가 올라가고, 이에 따라 개인소비가 하락하면서 갈수록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소비세 인상에다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개인 소비가 더욱 위축될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은 5년여 지속해온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는데 반해, 일본의 양적완화는 이제 시작단계다. 또 미국이 출구전략으로 금리를 인상하면 미일간 금리 차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 “경기하락 일시적일 것”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위험 요인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GDP의 두 배가 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비세를 인상해야 한다.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하면서 실질소득 감소로 연결된다. 차세대 리더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중의원 의원은 엔화 약세로 식료품과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는 바람에 임금이 올라도 고물가에 실질임금은 하락한다며 “소비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의 선순환은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엔화 약세에도 시장을 찾아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국내 규제 완화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 풀어야 할 과제는 고질적인 고령화 문제다. 일본 인구는 2008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고 인구 4명중 1명이 65세가 넘는 세계 최고수준의 고령사회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 인구가 1억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인구 1억명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민정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단일민족 특성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이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외국인 인력은 인구 1,000명당 5명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도 건설 현장이나 후쿠시마 원전 복구현장에서 노동력 부족이 드러나지만 외국인력 수용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 경기 하락이 일시적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내년부터 세계경기 회복과 엔화 약세 효과가 가시화하면 수출이 점차 증가하고 경기도 호전돼 점진적으로 회복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성장전략 실행ㆍ기업 강화 둘 다 중요

아베노믹스의 위기는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점도 적지 않다. 일본의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지금까지 발표된 ‘성장전략’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베 내각이 야심차게 발표한 ‘일본부흥전략’과 그에 따른 성장전략의 핵심인 ‘암반(덩어리) 규제’에 대한 개선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엔고 상태에서 일본 기업이 보여주었던 노력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컨베이어벨트의 기존 생산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셀 방식(소수의 직원이 여러 공정을 책임지고 완제품 제조)을 도입함으로써, 주문 받은 복사기를 일주일 만에 배달한 캐논, 전사적 비용절감 운동을 벌였던 수많은 일본기업은 원고 상태를 맞은 한국 기업이 참고할 좋은 사례다. 이런 경쟁력 강화로 엔고를 넘긴 일본 기업은 이제 어떤 극한 상황도 견딜 탄탄한 기업이 됐고, 지금처럼 엔저에는 그 과실까지 즐기고 있다.

한국은 일본 보다 물가가 낮지도 않고, 경쟁국과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가격을 낮추는 뼈를 깎는 노력과 동시에 제품 차별화와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 외에 세계를 무대로 시장을 넓히는 방법이 딱히 없다.

지난 달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대형 생활용품점 도큐핸즈 매장에서 디자인이 우수한 52개의 아이디어상품을 전시하며 일본 소비자의 반응을 파악해본 적이 있었다. 바이어와 많은 소비자가 한국 상품의 디자인에 감탄하면서 일본 시장에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됐던 마이크를 변형한 블루투스 스피커, 메모지로 쓸 수 있는 휴대폰 케이스, 시계바늘이 없는 패션시계 등을 통해 아이디어만 있다면 일본 같은 선진국 시장에서도 한국 상품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정혁 코트라 일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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