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하에 사는 아동·청소년 23만명, 주거환경 개선 급하다

입력
2014.11.30 20:04
0 0

129만명이 주거빈곤 상태서 생활...지하 거주 비율은 노년층 2배 넘어...건강·학업에 악영향 이어져

선진국선 아동 있는 저소득층 우선...임대료 보조·냉난방비 지원하는데 최저 주거기준 어겨도 제제 없어

어릴 때의 주거는 어른이 되어서 신체 정신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미래의 주역을 위해 구체적인 주거개선안이 나와야 한다. 기초수급생활자를 위한 주거비용 지원에서 벗어나 모든 아동 청소년이 제대로 된 주거지에서 사는가 제도와 현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변두리의 열악한 주거지. 신상순 선임기자
어릴 때의 주거는 어른이 되어서 신체 정신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미래의 주역을 위해 구체적인 주거개선안이 나와야 한다. 기초수급생활자를 위한 주거비용 지원에서 벗어나 모든 아동 청소년이 제대로 된 주거지에서 사는가 제도와 현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변두리의 열악한 주거지. 신상순 선임기자

한국도시연구소와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은 11월2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공동 창립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세대별 주거빈곤을 말하다’를 주제로 아동 청년 노인세대에서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이들의 현실과 이들을 위한 주거복지의 대안을 찾아보았다.

“주거란 자아를 외부로 표현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주며 삶의 존엄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반”이라는 관점에서 “주거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전체가 고통을 받”는데도 주거빈곤 가구를 줄이기 위해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데에는 반대소리도 있는 상황에서 “주거빈곤을 해소하는 공적 지원은 낭비가 아니고 사회의 새로운 동력을 찾는 마중물이 된다”고 양 단체는 이 심포지엄의 개최의미를 설명했다. 미래의 경제주축인 아동의 주거빈곤을 막아야 할 이유는 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노년층의 주거빈곤은 국가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고 청년층의 주거빈곤은 혼인과 출산률을 낮춰 미래의 한국을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적절한 주거를 확보하는 일은 낭비가 아니라 올바른 재정투입이라는 관점이다.

각 세대의 주거문제가 다 중요하지만 이들 가운데 20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이 스스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가장 없는 약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주거문제를 짚은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연구위원의 ‘아동주거빈곤의 실태와 대책’을 집중 소개한다. 최 연구위원은 20세 미만자를 ‘아동’으로 표기했으나 사회통념상 편의를 위해 이들을 아동 청소년으로 바꿔 소개한다.

IMF 경제 위기 이후 빈곤층은 늘어나는 반면 저소득으로 유지할 수 있는 주택은 점점 감소하고 있어서 지하와 옥탑 또는 집이라고 부를 수도 고시원 등으로 밀려나고 실정이다. 이에 따라 아동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는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토대로 2013∼2014년에 아동 청소년 13명의 9개 가정을 심층면접한 것을 토대로 연구했다. 이들 중 7가구는 기초생활수급가구이고 1가구는 차상위, 1가구는 일반가구였으나 4가구가 지하에, 2가구가 컨테이너에, 1가구가 쪽방에, 1가구가 여인숙에, 1가구가 간이조립식 주거지에 살고 있었다. 수급자 대부분이 이 가운데는 그나마 나은 지하주택인 반면 차상위가 여인숙, 일반가구가 간이조립식에 살았다. 이것은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정 중심으로 이뤄진 주거지원 정책을 모든 아동 청소년이 속한 주거기준에 대한 총점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9만 명의 아동 청소년이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주거빈곤 상태에 있으며 지하에도 23만 명이 살고 있다.

아동 청소년에게 주거가 중요한 것은 체중 1kg당 어른들에 비해 더 많이 숨쉬고 더 많은 물을 마시며, 더 많은 음식을 먹으므로 외부 환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 음식 난방 교육 등에 대한 지출이 감소하고 과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나타난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동 청소년의 신체건강 정신건강 학업성취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 아동기에 주거환경이 나쁘면 어른이 되어서도 건강이 나쁜 것은 여러 나라 연구로 밝혀진 실정. 환기가 안 되는 주거는 습기와 곰팡이를 통해 천식을 불러일으키며 천식은 폐기능을 떨어뜨린다. 호주의 연구에서는 과밀 주택에 거주하는 8세 미만 아동이 뇌수막염에 걸릴 확률은 10배 이상 높으며 어린 시절 과밀한 곳에서 산 사람이 65∼70세가 되었을 때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될 가능성은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부절적한 주거는 분노와 우울 스트레스를 불러 정신건강을 크게 해치고 과잉행동, 공격성향과 같은 행동 장애를 불러오기도 한다. 여인숙 겸용의 쪽방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가정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이 크게 난폭해져서 정신과 병원을 다닌다고 전했다. “술 취한 사람들의 해코지를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받은 영향이 매우 커 보인다.”

미국의 연구에서는 주택 임대료 보조를 못 받는 가구의 아이들은 일반아동에 비해 철분 결핍이 50% 이상 더 나타났다. 이 때문에 영국 미국 등이 모두 아동이 있는 가정을 우선적으로 저소득층의 주거 임대료를 보조하거나 냉난방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나 한자녀가정 등을 중심으로 주거복지를 주로 논의하지만 전반적인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저소득층의 주거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외국에서는 보통 주거비가 소득의 25∼30%를 넘으면 정책 대상이 되지만 우리나라에는 관련 기준조차 없다. 심지어 전체 가구의 20%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의 도시 세입자 가구는 평균적으로 가처분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다.(통계청의 2012년 가계동향조사) 2인 이상 도시 임차가구만 따지면 가처분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9.0%로 줄지만 1인 가구를 포함시키면 50.7%가 된다.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이 주거비로 빠져나간다는 말이다. 2006년만 해도 가처분 소득 대비 36.4%였으나 2011년에는 53.0%까지 올랐다가 2012년에 집값이 떨어지면서 그나마 50.7%로 줄었다.

주거비가 많이 들면 나쁜 주거도 마다할 수가 없고 당연히 이것은 아동 청소년의 주거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구원수에 비해 침실이 부족하거나 비좁거나 욕실?화장실?부엌을 다른 가구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의 아동은 113만 명이다. 시설 미달 20만 명, 면적 미달 96만 명, 방수 미달이 20만 명으로 특히 과밀 문제가 심각하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아동에다 거주 환경이 열악한 지하?옥탑 거주 아동을 포함하면 126만 명, 여기에 주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외의 기타 거처 거주 아동을 포함하면 129만 명(11.9%)의 아동이 주거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기준)

한부모가구 50만 중에는 11만 5천 가구(23.1%)가, 소년소녀가장가구 7만 중 2만 5천 가구(37.0%)가 주거빈곤 상태이다. 이 비율은 아동 청소년 주거빈곤 가구 비율 11.7%에 비해 2∼3배 높다. 이 중에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거나 지하 또는 옥탑에 살고 있는 비율이 한부모 가구 중에는 22.7%(11만 3,710가구)인 것도 놀랍지만 소년소녀가장가구 중에는 무려 31.6%(2만 1,515가구)나 됐다.

아동 청소년 자녀를 둔 주거빈곤 가구가 사용하는 방은 2개가 57.8%로 가장 높았다. 11만8,033가구가 단칸방에 살았는데 그 중 10%는 1인 가구이고 나머지는 2~6인 가구였다. 혼자 사는 것도 측은하고 여럿이 살아도 딱한 사례인 셈이다.

빈곤가구는 지하와 옥탑 거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월세가 43.5%로 가장 많았다. 빈곤가구는 오래된 단독주택에 주로 산다. 이것은 구조 상 방 하나, 둘을 빌릴 수 있는 주거형태가 오래된 단독주택이어서일 것이다.

주거가 열악한 곳에서 사는 아동 청소년의 비율은 서울(16.1%)이 가장 높았으며 인천 제주(11.4%) 부산(11.1%) 순이었으며 낮은 지역은 광주(6.3%) 울산(6.9%) 충남(8%) 순이었다.

전국적으로 114만명이 지하에 살고 있는데 이 중 23만657명(전체인구 중 20.2%)이 아동 청소년으로 다섯 중 하나가 지하에 살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 10만3,654명(9.0%)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다. 한국의 주거 요건이 집값이 오르기 전에 집을 사고 정착한 고연령층에 비해 청장년층에서 더 나빠지면서 아동 청소년의 주거여건도 덩달아 나빠진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 67만 명이 지하에 거주해서 전국의 59%를 차지한다. 서울에서도 지하거주 아동 청소년 인구(13만 명)는 노인 인구(6만 명)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주거빈곤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주거 자활 능력이 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주거복지 정책이 공공임대주택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공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입주자가 임대료나 관리비 등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입주가 가능하다. 200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수급자의 주거안정을 위해 주거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지만 지원금액이 적어 실질적인 효과를 별로 보지 못하고 있다.(실제로는 주거지원비가 나오면 기초생활지원금에서 그만큼 빼고 주는 지자체도 많다.) 최저주거기준은 법제화했으나 실제로는 이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거시설에서 살고 있는 경우에도 제재할 방법은 전혀 없다. 2010년 서울시에서 침수문제 등 지하주거의 심각성을 인정하여 반지하 주택의 건축허가를 제한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앞으로 지어질 지하주거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에 ‘UN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과 ‘UN 아동권 협약’을 비준하고서도 이에 걸맞게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적은 하위 법령을 갖추지 않아 아동 청소년의 적절한 주거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 ‘아동의 빈곤 예방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원안에는 주거 부문이 들어있었으나 2011년 국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제외되었다. 아동복지법에도 복지시설이나 위탁 시설 보호 대상 아동의 시설 퇴소(18세) 이후의 주거 지원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춥고 축축하고 어두운 방에서 매일 아침을 맞는 아이들은 열악한 주거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 나아가 안전과 생명까지도 위협받으면서 생애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임대료 체납 등으로 인해 언제 길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아이도 있고 소득에 비해 과도한 임대료 때문에 식품?의복 등의 소비를 제약 받는 아이도 있다. 어린 시절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건강 및 학업 성취 등을 통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들의 삶이 열악한 주거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