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신설 비판여론 의식한 듯
앞으로 4년 내에 1심 단독판사의 절반 이상이 부장판사로 배치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플랜’을 12월 중 열리는 전국법원장 회의에서 논의한다고 30일 밝혔다.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 중인 대법원이 또 하나의 상고심 법원을 만들기에 앞서 하급심을 강화하고 대법관을 증원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오자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다.
경륜 있는 부장판사가 단독재판을 진행하면 재판 신뢰도가 향상되고, 당사자의 선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현재 단독재판은 대부분 경력 5~9년의 법관이 판결하고 일부 예외적인 경우만 부장판사가 맡는다.
민사 소액ㆍ중액 전담 경력 법관 임용은 서울중앙지법 등 5개 지법에서 전국 법원으로 확대하고, 요구 경력을 기존 15년 이상에서 20년 이상으로 높인다.
고등법원의 경우 2016년 내지 2017년까지 법관 전원을 15년 이상 경력자로 구성한다.
전문재판을 강화해 재판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의사 건축사 등 전문가를 전문심리관으로 배치하는 ‘준 참심제(선거 또는 추첨에 의해 선출된 참심원이 전문 법관과 함께 법원의 합의체를 구성해 소송을 심판하는 제도)’ 시행을 확대한다. 현재 특허법원은 좌배석 판사 옆에 기술심리관을 앉혀 소송 심리에 참여시키고, 선고 7~10일 전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국제거래(서울중앙지법), 증권·금융(서울남부지법), 언론·개인정보침해(서울서부지법), 해사(부산지법) 등 특정분야 사건을 집중 처리하는 특성화 법원 제도도 운영한다. 전국 지법에서 각각 처리하고 있는 특허침해소송은 고법 소재지 5개 지법이 전속 관할한다.
이밖에 대법원은 ‘본안 전 증거조사절차’를 강화해 법원이 의료사고, 기업 상대 제품ㆍ서비스 피해 등 사건과 관련해 증거수집절차를 도와주고 이에 불응할 경우 제재한다고 밝혔다. 인신사고, 인격권 침해 사건에서 법관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위자료 산정 기준과 사례를 자료집 등으로 공개해 재판 절차와 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자율적 분쟁해결도 촉진할 방침이다. 패소한 측이 부담하는 소송비용 중 변호사 보수액은 상향 조정해 민사소송의 남발을 방지한다.
사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상고법원 신설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지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하급심 강화와 대법관 구성 다양화 등을 상고법원 신설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했다. 대법원은 제한된 수의 대법관들이 늘어나는 상소사건을 감당할 방법이 없어 상고법원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20년 동안 1심 단독재판부 사건의 상고율이 2.89배 증가해 1심 합의부 사건 상고율(1.6배)보다 크게 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하급심 강화가 상소사건 감소에 더 효과적이란 지적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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