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교육용 '인지 게임' 체험 워크숍
팀원들이 제시어로 문장 만든 후 토론하며 고민 해결책 찾는 방식
“학교 선생님이 여자애들은 원래 수학을 못 한다고 핀잔을 줘요. 어떤 남자애한테는 목소리가 가늘다며 몇 번이고 다시 대답하라고 시켰어요.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이 많은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A팀 참가자는 카드에 적힌 문제를 읽고 안내판에서 ‘활동적인 친구’ ‘포스트잇’ ‘당당한 항의’가 적힌 카드를 골랐다. 그는 “활동적인 친구와 함께 당당한 항의 의사를 써서 그 선생님 책상에 도배해 버려요”라고 말했다.
이 팀의 다른 참가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카드 세 개를 집어 들었다. “제 경험상 자칫 벌점만 받을 수 있어요. ‘용감한 친구’와 ‘설득력’ 있게 ‘편지’를 써서 선생님께 보내는 건 어떨까요?”
대학생, 대안학교 교사 등 12명이 세 팀으로 나눠 게임이 몰입했다. 27일 시민단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개발한 교육용 성 인지 보드게임 체험 워크숍이 열린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팀장은 “일상에서 겪는 성에 대한 편견을 되짚어보는 게임”이라며 “성 지식과 행동규범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게임 방식은 이렇다. 각 팀은 보드에 놓인 7장의 성 관련 고민 중 하나를 뽑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팀원들은 안내판에 적힌 제시어로 문장을 만들어 토론한 뒤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정해 발표하는 것으로 한 가지 과제가 끝난다. 고민을 해결할 때마다 성 관련 퀴즈도 등장한다. 문제는 ‘사후 피임약은 성관계 후 ( )시간 안에 복용해야 95%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사지선다형이다. 여기서 답은 24.
참가자들이 가장 어려워한 고민은 동성애였다. ‘같은 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동성애자로 소문난 친구를 욕하고 때려요. 그 친구는 부모님께서 아실까 봐 말도 못하고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이 사례를 두고 한 참가자는 “‘위로가 되는 친구’와 ‘자신감’을 갖고 ‘퀴어 퍼레이드’에 간다”는 의견을 냈지만, 팀원들은 이 친구가 성 정체성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을 고려하기로 했다. 한참 토론한 끝에 이들이 선택한 해결방안은 “‘편견 없는 친구’와 ‘성문화센터’에 가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거울’을 보며 자존감을 키운다”였다.
게임을 끝낸 이들은 청소년들과 즐기면서 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안학교 교사인 이광용(32)씨는 “청소년들은 뚱뚱한 것을 고민하는 친구나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이해하기보다 놀리기 쉽다”며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의 고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권유경(24ㆍ여)씨는 “타인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게임 내용을 보완해 연말쯤 이 보드게임을 시중에 내놓을 계획이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