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산대 패션디자인학과 5명 버려지는 옷 에코백으로 제작
환경 살리고 노인 자활센터에 일감, 수익금은 봉사단체 기부 1석3조
“싹둑싹둑, 드르륵 드르륵….” 28일 오후 부산 반송동 영산대 안의 작업실. 20㎡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이 대학 패션디자인학과생 다섯 명이 가위, 재봉틀 소리를 배경으로 손을 바삐 놀리고 있다. 옷을 만드는가 싶은데, 살펴보니 그 반대다. 커다란 재단가위를 든 최두현(23)씨는 코듀로이 재질의 밤색 셔츠를 조각조각 분해 중이다.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 청바지도 같은 운명. 최씨는 “유행이 지났거나 헤져서 못 입는 옷으로 가방을 만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옷 조각들을 넘겨받은 탁경호(23)씨가 박음질로 이어 붙이고, 배상욱(27)씨가 검은색 손잡이를 덧붙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에코백(Eco bagㆍ환경을 생각하는 재활용 가방)’이 완성됐다. 가방을 두고 배씨는 “쓰레기에서 부활해 자신의 몸값을 사회에 기부하는 고마운 가방”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단순한 재활용(Recycling)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 업그레이드(Upgrade)한다는 뜻의 업사이클링(Upcycling) 운동이 청년 창업가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고 있다. 영산대생 다섯 명이 뭉친 청년기업 ‘리나시타(Renascita)’ 얘기다. 리나시타는 ‘다시’를 뜻하는 영어단어 ‘Re’와 ‘재생, 부활’을 의미하는 고대 이탈리아어 ‘Rinascita’의 합성어로, 쓸모 없어진 의류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 부활시킨다는 의미다.
리나시타의 탄생은 유행하는 옷을 저렴하게 사서 한 철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급증하는 의류 쓰레기 재활용법을 고민하던 배상욱씨가 지난해 10월 후배 네 명과 전공을 살려 멋진 가방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한 것이 시작이었다.
리나시타 가방의 재료가 되는 옷감은 지인들에게 기부 받거나 중고의류 수출업체에서 싸게 구매한다. 모인 옷감은 재단과 디자인 작업을 거쳐 대량생산을 위해 부산과 서울의 자활센터 봉제공장에 보내진다. 자활센터 봉제공장의 근로자들은 주로 60~70대 노인들. 아무래도 손놀림이 젊은 사람같지 않은 이들에게 일감을 주는 것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생활을 돕고 싶었다”는 게 배씨의 설명이다.
‘가방의 착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올해 1월부터 가방 1개당 판매 수익금 1,500원을 부산 대연동에 있는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배씨는 “아직 기부금 액수가 크지 않지만 판매가 증가하면 규모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같은 선순환을 가능케 한 것은 ‘좋은 뜻’을 볼품 있고 실용적으로 구현해 낸 디자인실력이다. 주 고객인 20대들은 “캠퍼스룩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다. 한 달 평균 100여개씩 제작되는 가방 가격은 4만~8만원으로 그리 저렴하지 않지만 온라인과 서울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완판’되고 있다.
청년창업을 돕는 링크(Linc) 사업 지원금 300만원으로 시작한 리나시타는 그 의미를 인정 받아 올해 4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 육성 대상으로 지정됐다. 지원금 4,000여만원을 토대로 사업을 확장 중이고, 다음달에는 법인 등록도 할 계획이다.
배상욱씨는 “지방대 출신에 변변한 스펙도 없었지만 취업에 얽매이지 않고 눈을 돌려보니 길이 있었다”며 “좋아하는 일에 의미를 더할 수만 있다면 사회적 기업인이 되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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