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모아 동향보고서 형식 작성...정보원도 없어 사실무근 판단
"대통령 비선에 민감" 아는 측근들...공개 장소서 10명 모임 무리 지적도
일각 "A경정 모 인사 의중 따라 조사"...파워게임설 제기도...檢 수사 주목
세계일보가 28일 보도한 청와대 문건은 박근혜정부의 숨은 실세라는 의혹을 받아 온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를 비롯해 국정에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것이 골자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올 1월 작성된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비선 인사가 막후에서 국정을 쥐락펴락 했다는 얘기가 되므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질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건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문건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 정윤회, 국정 농단 배후?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박근혜 대통령을 지칭)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정씨가 국정 전반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실력자로 묘사돼 있다. 문건은 정씨가 2013년 10월부터 매달 두 차례 씩 서울 강남의 식당에서 '십상시(중국 후한 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들) 멤버'들을 만나 청와대 내부 상황과 국정 운영 등을 점검했다고 적시했다. 십상시는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 청와대 비서관 3인방과 새누리당 당직자 및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대선캠프 실무진 등을 가리킨다. 정씨가 같은 모임의 2013년 송년 회동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2014년 초ㆍ중순에 그만두게 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밝히고 언론과 정보지를 통한 여론 조성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관련 내용 일체를 부인했다. 문제의 문건은 정권 출범 초부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올 2월 경찰로 돌아간 A경정이 정치권 등 시중에 나도는 소문들을 모아 동향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했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 설명이다. 또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내용을 보고 받은 것은 맞지만, 객관적 사실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문건에 정씨 행적과 관련한 사실 여부를 판단할 만한 정보원 등은 명시돼 있지 않고 "…한다 함" "…하였다 함" 등의 진술들만 나열돼 있다는 점도 청와대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지점이다.
여권에서도 문건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당장 정씨가 청와대 밖의 공개된 장소에서 10명 안팎의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도 거의 접촉하지 않을 정도로 비선 의혹에 민감해하는 것을 잘 아는 측근들이 정씨를 만나 그의 지시를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 청와대 행정관이 정윤회를 뒷조사한 이유는?
A경정은 행정관 임명 1년 만에 청와대를 나가 사실상 좌천됐다. 청와대는 "통상적 인사였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권 핵심 인사들의 주변을 캐고 다닌 것이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정씨 관련 문건의 신빙성 여부나 A경정 좌천 배경과 상관 없이 문건이 공개되면서 A경정이 정씨의 동향을 비밀리에 조사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A경정이 박 대통령의 측근들 중 자신과 가까운 모 인사의 의중에 따라 정씨를 뒷조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 문건 작성 배경에 박 대통령 주변의 파워 게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정씨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은 만큼 청와대에서 정씨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정씨와 김기춘 실장,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 등 정권 실세들간의 권력투쟁 의혹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사실은 하나도 없다. 십상시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의지하고 당내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꼬집은 정치 수사적 표현으로, 실체가 있는 모임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문건을 작성한 A경정을 검찰에 수사의뢰할 방침이어서 권력암투 내지는 투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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