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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음악·영화의 세 전설이 극적으로 마주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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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음악·영화의 세 전설이 극적으로 마주친 순간

입력
2014.11.2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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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다크 나이트’에 이어 ‘인셉션’을 보면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천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앞선 두 영화만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탓이다. 부질 없는 비교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비하면 아직 놀런은 설익은 천재가 아닐까 싶다. ‘인터스텔라’를 보며 여러 차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떠올라서 해본 생각이다.

놀런 감독은 ‘인터스텔라’를 만들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놀런뿐일까. 1970년대 이후 나온 우주 관련 SF 영화 중 이 작품의 자기장에서 벗어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큐브릭 감독이 50년 영화 인생에서 유일하게 만든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주를 다룬 SF 영화지만 사실 인류의 근원을 철학하는 영화에 가깝다. 원작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한 아서 C. 클라크의 단편 소설 ‘파수병’. 약육강식의 원시 생활을 하는 인류의 조상이 동물 뼈를 살인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영화는 수백만년을 건너 뛰어 2001년의 우주로 나아가고 종국에 인류의 근원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도입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멍했던 기억이 난다. 어렵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 9000의 등장이었다. 영화의 끝은 몹시 모호해서 수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웜홀과 블랙홀을 통과하듯 우주비행사 데이브는 낯선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그는 노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죽기 직전의 데이브 앞에 정체 불명의 검은 비석이 나타나고 태아로 되돌아간 데이브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시작 후 25분간, 끝나기 전 23분간 대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한 이 영화에서 음악은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유인원 모양의 원시인이 하늘로 던져 올린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시공간이 비약하면서 나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 쓰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대표적이다. 헝가리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분위기’, ‘영원한 빛’, ‘진혼곡’을 곳곳에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큐브릭은 우주정거장이 천천히 회전하는 모습을 우아한 왈츠 리듬으로 표현했다. 인류와 우주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의 사운드트랙으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사용했다.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동명 저술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이 곡엔 음 자체를 수단으로 서사와 문학을 표현하려 했던 작곡가의 실험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자연을 나타내는 C장조 및 C단조와 그와 가장 멀면서도 반음 차이로 가까운 B장조, B단조가 대립하며 발전해 가는 구조를 통해 자연과 조화, 대립 속에서 인류가 진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에 대해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 가는 모습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교향시에는 여덟 개의 작은 표제가 붙어 있는데 영화에 쓰인 음악은 서주에 해당하는 ‘일출(Sunrise)’이다. 오르간의 저음 위로 조용히 등장했다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팀파니와 트럼펫 소리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큐브릭은 이 영화를 준비하며 직관적으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떠올렸던 게 분명하다. 슈트라우스가 어떤 의도로 작곡했는지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니체와 슈트라우스 그리고 큐브릭의 만남. 철학과 음악, 영화가 이보다 더 극적으로 조우하는 장면은 당분간 만나기 힘들 듯하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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