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쿤우 지음ㆍ김택규 옮김
북멘토ㆍ280쪽ㆍ1만4,000원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전면 침공했다. 베이징 남서쪽에 위치한 루거우차오에서 총성이 울리자마자 일본군은 만주를 넘어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해 나갔다. 난징에서 중국인을 학살했고 충칭을 비롯한 내륙을 무차별 공습했다. 전쟁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는 1945년까지 이어졌다. 국제적으로는 ‘제2차 중일전쟁’이 이 전쟁을 부르는 일반적인 용어지만 중국은 ‘항일전쟁’ 또는 ‘8년 항전’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평범한 중국인들이었다.
일본군 공습의 피해를 입은 지역 중에는 만화가 리쿤우의 장인이 살던 쿤밍도 끼어 있다. 지역 신문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작가는 1998년 아내의 아버지이자 공습의 실제 피해자였던 샤오징충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다. 그리고 다시 14년이 지난 2012년,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놓고 마찰을 빚었다. 리쿤우는 이 시점에 중일전쟁을 촬영한 일본 측의 사진기록을 우연히 수집하고 그 내용을 밝히는 과정을 만화로 그려냈다. 그의 입장에서는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전쟁에서 ‘내 가족’이 희생됐고 그 상처의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책의 원제도 ‘상흔’이다.
리쿤우가 책을 통해 중국의 국가주의를 확산시키려는 것일까. 그는 경제성장을 통해 강대국 반열에 올랐지만 국가 정체성을 잊어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정신을 잃은 민족은 돈이 많아도 소용없다”고 일갈한다. “매국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장면은 1940년 일본과 합작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 왕징웨이 일당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책을 읽는 이들을 향한 직접적인 경고의 메시지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한국 독자들에게 오만한 중화주의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책이 소개하고 있는 중일전쟁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남루한 군복을 입은 저항군 포로들과 겁에 질린 눈으로 전선을 바라보는 일본군 병사, 폐허가 된 도시에 처량하게 나붙은 양측의 선전 문구들은 일본의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으로도 숨길 수 없는 전쟁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사진들과 함께 책에 소개된 청일전쟁을 소재로 삼은 스고로쿠(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일본의 전통 보드게임) 속에는 청일전쟁의 주무대였던 한국이 등장한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충돌에 한국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중일전쟁뿐 아니라 어떤 전쟁도 인간성을 말살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그들의 마음 속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은 끊임없이 모든 전쟁을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설령 상처가 아물고 그 위에 새로운 번영의 살집이 돋아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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