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1월에 작성했다는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가 공개돼 파문이 크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의 막후 실세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정씨가 실제로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와대는 문건이 공식보고서가 아닌 데다 내용도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야당이 국회 운영위원회의 긴급소집을 요구하는 등 정치권으로 논란이 번졌다.
보고서의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다. 정씨가 월 두 차례씩 청와대 비서관ㆍ행정관과 만나 국정을 논의했고, 이 자리에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빠짐없이 참석한 것으로 돼 있다. 특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정씨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고, 시점은 2014년 초ㆍ중순으로 잡고 있다”면서 참석자들에게 이른바‘찌라시’를 통해 분위기 조성을 하라고 지시까지 했다는 내용은 소름이 끼칠 만하다.
다만 보고서 자체가 ‘찌라시’ 수준이어서 무시했다고 청와대가 해명했듯, 일부 내용이 엉성하고, ‘~라고 한다’로 끝나는 전문(傳聞)이 대부분이어서 소문을 주워담았을 가능성을 지우기 어렵다. 정씨의 말과는 달리 김 실장이 경질되지 않은 것도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 실세라는 인상을 주는 보고서 내용과는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고려와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윤회 문건’은 몇 가지 의문을 짙게 한다. 청와대가 인정했듯, 보고서의 작성과 최종 보고는 공식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경찰 출신 A행정관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정씨의 행적을 추적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청와대 공식 라인을 통한 ‘정씨 사찰’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중에 떠돌던 정씨 관련 소문에 청와대조차 전면 부인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씻으려면 청와대가 지금부터라도 정씨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행태에 대해 정밀히 조사해 그 결과를 밝혀야 한다.
또한 보고서의 내용은 조 비서관은 물론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과 김 실장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의 말대로 그 내용이 형편없었다면 조 비서관, 최소한 홍 수석 선에서는 걸러져 마땅했다. 왜 그런 형편없는 내용이 구두로라도 김 실장에게까지 보고됐는지도 청와대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더욱이 A행정관이 2월에 경찰로 원대복귀하고, 4월에는 조 비서관도 청와대를 떠난 것이 ‘정윤회 문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청와대의 조속하고 솔직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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