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라부터 현대까지...우리 문화재 지켜 낸 큰손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라부터 현대까지...우리 문화재 지켜 낸 큰손들

입력
2014.11.28 15:27
0 0

송지원 등 지음

글항아리ㆍ436쪽ㆍ2만6,000원

간송 전형필은 ‘문화재 독립운동가’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메세나인이다. ‘새로 쓰는 예술사’는 간송을 비롯해 신라시대부터 현대까지 문화ㆍ예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30여 명을 두루 살핀다. 글항아리 제공
간송 전형필은 ‘문화재 독립운동가’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메세나인이다. ‘새로 쓰는 예술사’는 간송을 비롯해 신라시대부터 현대까지 문화ㆍ예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30여 명을 두루 살핀다. 글항아리 제공

어느 시대나 예술가는 배 곯기 십상이었다. 예술은 돈이 되기 어려웠던 탓이다. 예술을 알아보는 사람은 지금처럼 과거에도 드물었다. 돈이 있으면 보는 눈이 없거나 심미안이 있으면 주머니가 가볍거나. 예술을 알아보고 기꺼이 제값을 치르며 후원하는 부호들이 시공을 초월해 빛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메세나(예술 후원활동) 개성 상인 3인방이 있었다. 이홍근ㆍ이회림ㆍ윤장섭이다. 개성 상인이라면 흔히 시대를 앞서간 무역상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 기여한 바도 크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방방곡곡을 다녀보니 일본인들이 빼가는 우리 문화재가 너무 많아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회림은 자신이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진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현재의 OCI인 동양화학공업을 설립한 이회림은 1917년 개성 만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일본의 문화재 약탈에 문제 의식이 강했다. 수없이 이를 목격하거나 들으면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한 때는 한국전쟁 당시다. 주로 동대문시장에서였다. “전쟁 때라 돈이 궁한 사람들이 종종 문화재를 들고 나왔고 평소 가격의 20~30퍼센트만 줘도 살 수 있었다”고 이회림이 회고한 적이 있다. 그는 1960~70년대 최고의 문화재 수집가로 꼽히는 이홍근, 최순우와 교류하면서 예술품을 보는 눈을 더욱 키웠다. 인천의 송암미술관이 이회림이 평생 모은 그림, 글씨, 도자기가 모인 곳이다.

이회림의 ‘개안’에 큰 영향을 끼친 이홍근도 1900년 개성에서 태어나 14세부터 장사를 배운 개성 상인이다. 30대에 이미 인삼으로 큰 부를 쌓아 일제강점기 말에는 조선에서 30위 안에 드는 거부가 됐다. “난 그땐 돈 버느라고 누깔(눈알)이 선했는데 일본 놈들은 시시한 놈들도 차완(찻그릇) 하나쯤은 즐길 줄 안단 말이야.” 스물 여덟이 돼 그가 고서화 수집에 눈을 뜨게 된 동기다. 온전한 청자가 아닌 파편도 사 모았다. 연구가치를 생각해서였다.

“수집 문화재는 자식에게 단 한 점도 상속할 생각이 없다”고 했던 이홍근은 이를 사회에 환원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기증 유물은 4,000~5,000점에 이른다. 더불어 거액을 기부해 미술사학이나 고고학을 연구하는 신진 학자를 지원했다.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난 윤장섭 역시 문화재를 지킨 개성 상인이다. 그의 수장품은 서울 관악구 호림박물관을 통해 전해진다.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은 그야말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메세나인이다. 1906년 서울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휘문고보 재학 시절 미술교사였던 춘곡 고희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승을 통해 일제 암흑시대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빛은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간송은 잘 알려져 있듯 거금을 들여 일본인들에게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데 힘썼다. 국내 최고의 사립 미술관으로 꼽히는 간송미술관은 지금도 해마다 봄과 가을에 무료로 대중에 문화재를 공개하고 있다.

문화예술인 후원이 때로는 정권의 안보를 위해서였던 때도 있었다. 고려의 무신정권이 그 예다. 쿠데타로 집권한 최충헌과 그의 아들 최이는 문인 우대정책을 장기 집권체제를 닦는 데 이용했다. 그 혜택을 입은 이규보에게 최씨 무신정권은 문학의 부흥을 가져온 후원자였을 터다.

‘새로 쓰는 예술사’는 이처럼 신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후원자들을 중심으로 예술사를 써 내려간 책이다. 신라 진흥왕, 고려의 무신정권, 조선의 안동 김씨 벌열, 개성상인, 간송,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메세나인 30여 명을 7명의 필자가 두루 소개한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