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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에 숨겨진 코드 인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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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에 숨겨진 코드 인간의 욕망

입력
2014.11.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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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 무어 지음ㆍ이재영 옮김

계단ㆍ512쪽ㆍ2만원

실용적 목적 외에 돈, 섹스, 권력, 과시 등 영향

"어떤 장소든 만든 사람의 성적 성향이 반영 된다"

아돌프 로스가 1930년 설계한 뮐러 하우스. 장식을 육욕으로 규정한 로스는 외관에 일체의 장식을 배제했으나 내부를 디자인할 때는 굳이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아돌프 로스가 1930년 설계한 뮐러 하우스. 장식을 육욕으로 규정한 로스는 외관에 일체의 장식을 배제했으나 내부를 디자인할 때는 굳이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스스로 건축가라 가정하고, 시들했던 성욕을 불일 듯 일어나게 하는 집을 디자인해달라는 의뢰를 건축주로부터 받았다고 해보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외관은 유혹하는 듯한 곡선, 아니면 접근을 거부하는 직선이 좋을까. 벽지는 휘황찬란한 무늬 혹은 순결한 백색? 카펫의 털은 긴 것 혹은 짧은 것? 아니, 제일 먼저 시계부터 제거해야 할지 모른다. 이 집에 들어선 남녀에게 내일은 없고 오직 오늘뿐이란 사실을 주지시켜야 할 테니까.

위의 극단적인 예와 달리 대부분의 건축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어진다. 그러나 먹고 자고 싸는 행위에 복무할 것만 같은 건축물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련의 의도들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건축가의 의도이기도 하고, 건축주의 취향이기도 하며, 때로는 당대의 바람이기도 하다. 영국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의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는 건축물에 숨겨진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건축과 인간 본성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발표하며 2014년 영국언론상의 ‘올해의 평론가’로 선정된 무어는 자신의 첫 책에서 돈, 가정, 상징, 섹스, 권력, 과시, 희망, 아름다움, 생활, 일상 등 10가지 요인이 건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저자는 건축의 에로티시즘이 단순히 러브호텔 설계를 의뢰 받은 건축가의 고뇌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집, 거리, 박물관, 공원을 비롯한 어떤 장소든 그곳에는 만든 사람의 성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 사실 건축이론이란 거의 언제나 남성들의 혼돈스런 성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인물로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를 지목한다. 로스는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유럽의 근대 건축이 만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것으로 유명한데, 무어는 이를 건축가의 성적 성향과 연관 짓는다. “우리의 육욕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에 역행한다.” 로스가 1898년 쓴 ‘레이디 패션’이란 글의 한 구절은 그가 성욕을 죄악시하며 억압해야 할 무엇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로부터 10년 후 쓰여진 로스의 유명한 에세이 ‘장식과 범죄’에서는 섹스에 대한 그의 생각이 건축관으로 확산된 것을 볼 수 있다. 로스는 여기서 제대로 문명화된 현대적 인간이라면 의복과 건물, 일상적 물건들에서까지 장식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식은 곧 퇴폐적이고 위험한 육욕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로스가 첫 부인 리나를 위해 1903년 디자인한 침실.
로스가 첫 부인 리나를 위해 1903년 디자인한 침실.

로스가 1930년 설계한 ‘뮐러 하우스’ 외관의 강박적인 단순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에 대한, 즉 사적인 성생활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달랐던 모양이다. 그가 2년 간 결혼생활을 했던 첫 부인 리나를 위해 1903년 디자인한 침실은 늘어뜨려진 실크와 풍성한 털을 자랑하는 카펫으로 꾸며져 있다. “의도는 명백하다. 로스가 역겹고, 복잡하고, 부자연스럽다고 했던 욕망을 축복하면서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그는 그런 욕망을 ‘역병’과 견주고 퇴폐와 연관시켰지만, 자신은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로스의 모더니즘 건축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뒤덮은 격자형 사무실 빌딩과 아파트 건물로 이어졌다. 자신의 성욕을 용서하지 못한 한 사내의 번민이 우리 거주지의 양식을 결정 지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건축과 인간 본성의 내통을 파헤치는 저자의 행보는 때론 아슬아슬하지만 대체로 흥미롭다. 그는 유명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 도시의 격을 높여줄 것이라 믿는 정치인들을 비웃는 한편, 인간으로 하여금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만드는 건축의 위력에 두려워 떤다. 건축가들의 몽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다가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건축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건축의 매력을 활짝 열어 보이며 능동적으로 건축과 교감하기를 촉구하는 저자의 말은 자못 유혹적이다.

“어떤 한 건물이 유한하고 완전해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변화는 일어난다. 이런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이라는 속성은 일시적이고 우연한 특징이 아니고, 건축이라는 것의 본질일 뿐 아니라, 건축이 가진 힘과 매력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제건축평론가협회가 수상하는 2014년 저술상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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