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세차례 경고 주장 확인 안 돼
공권력 폭력성 비난 여론 커질 듯
백인 경찰관이 공원에서 모의권총을 갖고 놀던 12세 흑인 소년에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담긴 동영상이 27일 공개됐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주춤해졌던 미국 경찰의 폭력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다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CNN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경찰은 이날 경찰관 총에 맞아 지난 23일 숨진 흑인 소년 타미르 라이스의 피격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흑인 용의자가 모의권총으로 행인들을 겨냥한다’는 한 시민의 911 신고와 경찰 본부의 출동 명령이 담긴 2건의 음성자료와 함께 공개된 영상은 경찰의 조급하고 과민한 대응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공원 보안용 CCTV가 촬영한 8분 분량 영상은 타미르가 22일 오후 모의권총을 들고 공원 인도를 배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끔 멈춰 모의권총으로 조준 사격하는 흉내도 내던 소년은 비와 햇빛을 가리는 천장이 설치된 인근 잔디 밭의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가 도로를 뛰어넘어 잔디 위에 급정차하고, 채 2초도 지나지 않아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당시 출동한 두 명의 경관 티모시 로이먼(26)과 프랭크 검백(46)은 ‘총을 버리라고 세 번 외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영상에는 음성이 담기지 않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또 ‘타미르가 허리 띠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고도 주장했다. 타미르는 총격 후 4분 뒤 도착한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응급처치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숨졌다.
경찰 경력 7개월에 불과한 신참 로이먼과 6년차 검백은 출동 당시 타미르가 어린 소년이며 그가 휘두른 총이 가짜 권총일 수도 있다는 정보를 전달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공개된 911 신고 음성기록에는 ‘어린 청소년이 모의권총으로 보이는 총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 포함됐지만, 경찰 출동명령에는 해당 부분이 빠진 채 ‘총을 가진 흑인이 공원에서 행인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내용만 담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두 경관은 타미르가 피격된 직후, “20세 안팎의 용의자가 쓰러졌다”며 응급차량 지원을 요청했다.
클리블랜드 경찰은 “이번 사건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며, 두 경관을 정직시킨 상태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 공개에 동의한 타미르의 가족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해 우리 아이가 희생됐다”면서도 “지역 공동체는 냉정을 잃지 않은 채 평화롭게 이번 사태를 수습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기도 한 이날 퍼거슨 시와 워싱턴DC,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전날보다도 더 규모가 줄어든 산발적 시위만 있었을 뿐 겉으로는 완연히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특히 퍼거슨 시에서는 소요를 막기 위해 파견된 주 방위군 막사에 일부 시민들이 찾아가 명절을 축하하고 음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경미한 규칙 위반으로 일부가 경찰에 연행됐을 뿐 평화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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