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부터 길 가던 사람까지
2005년 시작해 벌써 300여점
"1000장 모이면 책으로 엮어
주인공들 초청 전시회 열고 싶어"
옷 가게에서 만난 학생, 부부싸움으로 냉전 중인 친구 부모, 개그우먼이 되고 싶어하는 여학생, 해외여행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외국인….
10년 동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위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30대 여성 디자이너가 있다. 아트디렉터 안기은(30)씨. 친숙한 이웃들 뿐 아니라 길 가다 만난 모르는 사람들까지 그리는데, 1,000명이 목표다. 대학생이었던 2005년부터 한 두 장씩 그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0점에 이른다. 인근 옷 가게에 놀러 온 여고생의 초상화는 안씨의 작품전 포스터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위인들이잖아요. 내 주변에 있는 위인들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안씨는 그림을 그리기 전 모델과 많은 얘기를 나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정신과 성격, 경험 등에서 나오는 느낌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사람을 봤을 때 ‘첫인상’이란 게 있지만 이후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알아갈수록 특징과 고유의 에너지가 나오는데, 이것에 따라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이 달라진다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그림을 그릴 때 모델을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법도 다양하다. 수채화로 다양한 색깔로 번짐 효과를 이용해 추상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목탄이나 연필, 콩테 등 건식재료로 가볍게 선으로만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본 틀이 만들어지면 대상자가 좋아하는 글귀를 담아 컴퓨터 기법으로 마무리한다. 선 몇 개로 5분여 만에 맘에 드는 초상화를 완성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고민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언제까지 1,000명의 초상화를 완성하겠다는 기약은 없다. ‘마감’이 생기면 부담이 생겨 작품활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년에는 목표를 완성할 계획이다.
대학 3학년 때 한창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에 그림에 대한 회의에 빠져 한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은 적도 있다. 그 즈음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이너 아르망 메비스와 함께 워크숍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와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며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됐다.
1,000장의 초상화가 모이면 ‘1,000명의 이웃집 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어내고 싶다고 했다. 또 전시회를 열어 책 속의 주인공 1,000명을 초청할 예정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이 그림을 보는 모든 분들이 옆에 있는 분들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안기은 디자이너의 '1000명의 얼굴, 꿈 그리기' 프로젝트의 자세한 내용은 크라우드펀딩 와디즈(http://www.wadiz.kr/Campaign/Details/469)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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