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6국 감산 안 하기로 의견 모아
러시아는 유가 60달러까지 용인하기로
석유수출기구(OPEC)가 끝내 감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제유가 하락에 비교적 영향이 적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산유국의 입김이 반영된 결과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OPEC이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석유장관회의에서 하루 평균 3,000만 배럴인 기존의 산유 쿼터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회의를 마친 알리 알 오마이르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산유 쿼터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일부 회원국은 국제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감산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부국에 속하는 걸프 지역 산유국들은 미국 셰일가스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제유가 하락을 어느 정도 용인해 왔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시장점유율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심산이다.
이번 회의 결과는 예견됐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지역 6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이사회(GCC)는 회의 전 이미 감산을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사우디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전날 빈에서 열린 GCC 석유장관 회담 후 기자들에게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합의했다”며 “OPEC이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매우 확신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최고경영자 이고르 세친이 26일 빈에서 사우디, 베네수엘라, 멕시코 석유장관 등과 만난 후 유가가 60달러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의에 앞서 전했다. 이 회동에 참여한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도 “러시아의 내년 석유 생산은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친은 특히 유가 하락이 산유 비용이 비싼 국가를 특히 힘들게 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셰일유를 겨냥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OPEC은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공식 산유 쿼터를 420만 배럴 감축했으며 3년 전 하루 3,000만 배럴로 낮춘 상태로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그러나 친시장ㆍ친서방 성향의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이 쿼터를 초과해 생산함으로써 사실상 증산 효과를 내왔다.
감산 불발설이 흘러 나오면서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국제유가 하락은 계속됐다. 2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40센트(0.54%) 떨어진 배럴당 73.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도 56센트(0.71%) 떨어진 배럴당 77.77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편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푸어스(S&P)는 러시아의 등급이 투기 수준으로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S&P는 앞서 러시아의 등급을 투자 수준으로는 가장 낮은 ‘BBB 마이너스’로 유지하면서 대외 채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신용 전망은 부정적이라고 밝혀 등급 강등 가능성을 예고했다.
S&P 애널리스트 크리스티안 에스터스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전망의 이유로 러시아가 저유가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부펀드에서 돈을 쓰기 시작한 점을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는 유가 하락으로 3년 전보다 13% 이상 줄어든 820억달러 규모의 ‘국가웰빙펀드’에서 약 20%인 160억달러를 꺼내 유가와 서구의 제재 충격에 허덕이는 국영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요청 기업에는 로스네프트와 국영철도 등이 포함돼 있다. 국가웰빙펀드는 애초 연금 지원 등 장기적인 사회적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석유 수입을 갹출해 조성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 들어 유가 충격 등으로 말미암은 루블화 가치 폭락을 저지하기 위해 보유 외환 가운데 약 900억 달러를 투입했으나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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