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 달려가던 민영·채은이 "이건 아니다" 싶어 대안학교로
숙제·시험 대신 교실 밖 다양한 경험, 스스로 삶과 가치관 찾아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했던 제 모습에 언제부턴가 회의가 들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나를 위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학교 밖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우리 전통을 알리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어요.”
조민영(17)양은 3년 전 경기 과천의 한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매일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교내외 각종 경시대회에서 20여개의 상을 받았다. 영재반에 들어갔고, 전교 2등까지 할 정도로 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꿈이 없었던 조양은 고교 진학을 앞둔 지난해부터 고민에 빠졌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조양은 올해 3월 1년 과정의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진학했다. 올해 개교한 이 대안학교는 숙제와 시험이 없는 대신 교실 밖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찾도록 돕는다. 교수ㆍ변호사ㆍ최고경영자(CEO)ㆍ작가 등 학생 1인당 멘토 2명이 조언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규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8개월, 조양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관심 있던 전통무예 단무도와 현대무용을 배웠고, 3주 전부터는 개그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로 표정이 워낙 무뚝뚝해 가만히 있어도 ‘화났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 제가 지금은 개그로 친구들을 웃겨준다니까요.(웃음) 함께 하는 삶에 대해 학교 밖에서 배우면서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서울 종로구 뫼비우스갤러리에서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재학생 27명(17~19세)이 기획한 ‘2014 벤자민인성영재 페스티벌’이 한창이다. 25일 열린 발표회에선 몸 개그로 한 바탕 웃음을 선사한 민영이 외에도 여러 학생들이 도예, 전통무예, 광고 포스터, 한지 공예 등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과 작품을 뽐냈다. ‘일상 속의 소중함’이란 주제로 스마트폰 촬영 사진 10여점을 전시한 신채은(17)양도 그 중 하나다.
신양은 사진전을 준비하며 지인 31명과 행인 15명에게 ‘언제 행복과 소중함을 느끼냐’고 물었다. 한 중학생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칠 때”라고 답했고, 청소부 할아버지는 “월급을 타 가족의 생계를 도울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그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은 신양은 “소중한 순간이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8일까지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모습은 밝았다.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게 두려웠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뇌교육 관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멘토 조연비씨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여행, 배움 활동 등을 통해 8개월 만에 부쩍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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