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방산 계열사 인수 타진에 삼성, 화학·토탈 추가 인수 역제안
이재용 부회장, 비주력 사업 정리… 대기업 '선택과 집중' 변화 신호탄
삼성그룹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방위산업, 석유화학 등 4개 계열사를 26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방산, 화학 등을 중심으로 그룹 규모를 키우겠다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먼저 삼성에 제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주력 사업 군에 집중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뜻이 맞아떨어지면서 매각 협상이 본격화했다. 재계에 따르면 한화 측은 당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방산 분야 삼성 계열사 인수에 관심을 가졌고, 그 동안 꾸준히 인수할 뜻을 내비쳤지만 삼성 측이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스마트폰의 판매 부진 등으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가 실적 악화에 고전하는데다, 이건희 그룹 회장의 장기 입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 구도 실현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한화 측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화학 계열사 2곳을 함께 사지 않겠느냐는 ‘패키지 딜’을 역제안했다.
한화로서는 방산 분야 계열사 인수에 드는 8,400억원보다 더 많은 1조600억원을 추가로 쏟아 부어야 하는 제안인 셈이다. 특히 석유화학 분야는 불투명한 업황과 인수합병(M&A)의 시너지 효과도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또 한번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재계에서는 이번 빅딜은 대기업들이 모든 업종을 거느리는 ‘선단식 경영’에서 벗어나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쪽으로 경영방침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조익노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은 모든 사업 영역에서 일등을 목표로 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건설, 화학 등 자본이 많이 드는 중후장대 분야를 정리하고 전자, 금융 중심으로 구조 개편 중인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김승연 회장도 최근 한화L&C 건축자재부문과 제약사 드림파마 등 비핵심 사업 분야를 매각하는 등 구조 개편 작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고, 방산과 화학 분야는 그룹의 뿌리이자 주력 분야라는 점을 감안 삼성 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최준철 VIP 투자자문 대표는 “한화가 인수할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은 한화의 화학 계열사와 사업 영역의 공통점이 많지 않아 제품 수가 늘어날 뿐 시너지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김 회장이 2조원을 과감히 베팅한 것은 그 동안 대한생명 등 초대형 M&A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자신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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